홍어회는 부패한 음식이 아니다
Bu-rite 프로젝트 5주 차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죽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어 죽는다는 어느 소설의 마지막처럼, 인간의 삶은 허무하다. 그런데도 인간은 쭈글한 핏덩이 때부터 무엇을 잃는다는 기분을 징그럽게 싫어해서, 엄마가 문 밖을 나서기만 해도 꺼이꺼이 울어댄다. 엄마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내 곁에, 내가 볼 수 있는 상태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쓸모에 부합하는 상태로 세상이 작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간의 숙명적 불운이다. 애초에 가진 적도 없는 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하게 되고, 어쩌지 못할 일들도 멋대로 바라다가 홀로 실망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강아지 꼬리에 불이라도 붙이는데, 아마 그런 짓을 하고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잘못에 언제나 ‘그냥’이라던가, ‘심심해서’라는 단서를 붙인다.
인간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기는 하늘 아래 벼랑 끝으로 폭주하는 기관차를 목도한 몇몇 인간들은 신을 찾는다. 신은, 인간을 납작하게 제련하고 남은 불순물에 숨어 있어서 여간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보던 대로 세상을 보면 신이 스쳐가도 알 재간은 없다. 신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극심한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큰 구멍이 났다. 가만히 보니 구멍은 늘 있어왔던 것도 같았다. 어렸을 적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던 것이 많지 않았을 때는 시험 문제 하나에도 구멍을 미움으로 가득 채웠다. 몸뚱이만 자란 어른이 되어서는 세기말을 연상케 하는 파괴적인 에너지로 술을 마셔댔다. 술에 취한 드라마를 벗어나서는 시간을 멋대로 가르고 나눠 보기 좋게 이름붙이고, 참으로 애썼다.
사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구멍은 태곳적부터 있어왔고, 어디에나 있었다. 구멍 때문에 불안하고, 구멍 때문에 화나고, 구멍 때문에 열심히 살았다. 도는 아무리 덜어내도 다함이 없다던데, 내 안에 구멍은 채우려 할수록 커지기만 했다. 막판에는 거의 속을 뻔 했다. 겨우 한 계단 지나왔을 뿐인데 무슨 대단한 성취를 했다고 안도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덮쳐 나는 깊은 물에 잠겼다.
괜찮지 않았다. 괜찮다, 라는 말을 별로 들어본 일이 없다. 인간은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며 친구를 바라지 말라고 했다.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못 할 것이 없다고 했다.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쓸모 있는 것들 외엔 죄다 들러리라서 시간이 있어도 도무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노동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문화자본의 감옥에서 나는 더 분주하게 애쓰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한밤중 귀신 울음 같은 호랑지빠귀 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곧장 마음이 다시 분주해졌다. 빠르고, 정확한 해결책이 머릿속에서 샘솟았다. 한동안 잠을 잊고 또 시간을 가르고 열을 내다보니 이내 신병 들린 듯 몸이 아팠다.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었다. 죽거나, 달라지거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그를 만났다. 그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홍어회는 부패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발효의 효과를 이용하여 조리된 음식이다. 우리의 불투명한 내부는 우리 삶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이 다른 삶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황현산, 「사소한 부탁」-
그는 삭힌 홍어를 ‘부패한 음식’이라고 납작하게 정의한 데에 대해 분노했다. 그의 분노에 나른하게 미열이 올랐다. 잠들지 못한 새벽녘, 조금은 게을러도 괜찮겠거니 싶었다. 차갑고 어두운 내 안의 구멍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었고, 그의 분노는 거대한 신이 되었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뒷발을 리드미컬하게 두드리며 똥을 싸다가 신나게 뛰어왔다. 진드기 붙은 풀밭에서라도 똥을 싸는 게 세상 가장 행복했던 강아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크게 웃었다. 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았다. 내 안에 깊게 깔린 허무의 원은 아무도 잠식하지 못한 신과의 통로였다.
나는 나를 용서했다. 악취 나는 풀이나 뜯어먹던 가젤이라도, 별 수 없었다. 가족과 밥을 지어 먹었다. 기억을 잃은 친구와 홧병 난 친구를 만나 떡볶이를 먹었다. 출근길에 만난 고양이에게 인사했고, 길바닥에 앉아 나물을 파는 할머니랑 손주 이야기를 했다.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의 왼편에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찌르르. 내 하루에서 톡 쏘는 홍어 맛이 났다. 맛이 좋은 걸 보니, 유명한 선비들이 유배를 갔다던 그 흑산도 홍어인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