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인연이 되기까지

Bu-rite 프로젝트 6주 차

by 김반장

잘 지냈냐는 인사에 “누구세요?”라는 답이 왔을 때는 대략 세 가지 경우로 볼 수 있다. 악연이었거나,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거나, 생뚱맞은 이에게 연락을 했거나. 나는 대충 두 번째 경우가 아닐까, 점치고 있었다. 그와 3개월 정도 함께 일했고, 몇 번 밥을 먹었고, 그의 결혼식에 가기도 했지만,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무려 3년 전이었다. 3년이면, 스쳐가는 인연 정도는 희미해지기 충분한 시간이 아니던가.

그다지 서운하지는 않았다. 나라고 그를 꼭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휴직을 하고나서는 약간의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자 아이돌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에도 경기를 일으켰다. 트라우마 증상의 일종이었는데, 딱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저 무리지은 사람들의 높은 텐션이 직관적으로 공포심을 자극했다. 그런 와중에 지나간 인연을 들추어 다시 만날 이익은 별로 없었다.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 얼어붙은 대화창을 보며 골몰해 있는 찰나 또 한 번 답장이 왔다.

“제가 사실 최근에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기억을 다 잃었어요.”

그것이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었다.

기억을 잃은 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를 지나쳐가는 그녀를 쫓아가서 두 손으로 훠이훠이 몇 번 휘젓고 나서야 나를 알은체 했다. 그녀는 여전히 늘씬하고 예쁜 여자였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져있었다. 예전보다 더 잘 웃고, 더 솔직하고, 남 일에 더 마음 아파하는 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 처음에는 하도 다 터놓고 이야기 하길래 내가 기억도 안 난다면서 뭘 믿고 저러나 싶었는데, 그것이 그녀만의 배려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녀는 예전 같지 않은 기억력이 타인에게 불편함을 줄까봐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을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녀는 곧잘 선물을 했다. 핸드크림부터 곱게 손질된 과일까지. 손재주가 좋았던 터라 그녀의 손을 거친 것은 모두 매끈하고 향기로워졌다. 나는 얼굴이 벌게지면서 까지 솔직하게 자신을 터놓고, 만날 때마다 작은 선물을 챙기는 그녀가 좋았다. 크림이도 그녀를 좋아했다. 크림이는 4살이 되어서야 우연히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된 얌전한 강아지였는데, 줄곧 좁고 더운 베란다에 갇혀 살아서인지 웅크린 모양대로 허리가 약간 굽어 있었다. 크림이는 너무 기분이 좋으면 오줌을 싸버리고는 했다. 그녀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유독 심하게 오줌을 쌌다.

기억을 잃은 자는 나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내가 머뭇거리며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마다,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줬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면 내가 얼마나 억울했는지 이야기하며 역성을 들어 조금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나중에는 그 부끄러움에 내성이 생겨, 오히려 조금 더 뻔뻔해진 것도 같았다. 그 뻔뻔한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내가 아주 어려진 것 같기도 했다.

기억을 잃은 자는 이 집 저 집 분별없이 친구 손을 덥석 잡고 골목길을 누비는 아이처럼 곧잘 사람을 모았다. 그렇게 화병난 자도 함께 놀았다. 화병난 자는 꼬마 반장이었다. 우리가 시끄럽게 떠들고 노래를 불러대면 칠판에 이름을 적듯 군기를 잡았다. 우리는 공짜 강연을 찾아 듣고, 떡볶이를 먹고, 산책을 하고, 찜질방도 가고, 돗자리를 챙겨들고 소풍도 가고, 크림이랑도 놀았다. 때로는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미워했다가, 잠시 조심스러워하고는 곧잘 다시 만났다.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서운함을 털어내고 함께 지내며 친구가 되었다.

그들을 만나기 전, 나는 내가 미움 받는 존재적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래도록 나를 미워하며 지내다보니 작은 일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두려워했다.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었다. 무겁고 진지한 고뇌 없이는 인생에 단 하나도 그냥 풀리는 일이 없었다. 무섭게 돌진하다 겁이 나면 도망쳤다. 도망치지 못하면 망쳐서라도 이별을 원했다. 짐짝처럼 쓸데없는 감정이 엉엉 울어대면 그마저도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냉소는 또 다른 의미의 회피였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지만, 실은 모든 것을 원했다.

사랑하지 못하는 질병과도 같았다. 오래 씹어야 달큼한 맛이 나는 쌀알처럼 오래도록 보살핌이 필요한 일이었다. 「피로사회」에서 저자 한병철은 한트케가 말하는 분열적 피로와 근본적 피로를 인용한다. 분열적 피로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각 개인 사이의 공동체, 친밀함, 공적 언어를 모두 파괴하는 폭력적인 피로이다. 분열적 피로의 세계에서는 각 개인들이 서로 다른 존재를 병적으로 불편하게 여겨 신경질적으로 서로를 공격한다. 반면에 근본적 피로는 개별화된 개인 사이의 불투명한 공간을 허용한다. 그 공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우애의 분위기 속에서 영감을 주는 무위의 영역이다. 근본적 피로의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억을 잃은 자 그리고 화병난 자와 함께했던 그 시시껄렁한 농담들은 나를 분열적 피로의 세계에서 나른한 근본적 피로의 세계로 인도했다. 우리는 무엇이 되든 그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세상의 약자였던 우리들이 함께 웃고 떠들며 머물렀던 시간들이, 스펙을 향해 달려가는 일정에서 바스러져 나온 무의미하고 하찮은 공백이 아니라 진솔한 마음을 터놓을 무한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순간마다, 우리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각자의 고통을 품고 만난 우연에서 대단한 인연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품이 들었는지 모른다. 잊지 않고 곁을 가꾸고 보살피는 일, 그것이 우리 가젤들의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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