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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Nov 14. 2022

[라오스 일상] 한국어 부여잡고 있기

주말 한글학교 그리고 목요일부터 대성통곡

목요일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찡찡대더니

목요일 밤에는 드디어 대성통곡을 한다.

한글학교 안 가면 안 돼요? 왜 가야 해요?!

넌 한국사람이니까 가야지

그래서 엄마랑 국어 문제지도 매일 풀잖아요

그건 맞지. 우리는 매일 국어 문제지를 두장씩 푼다. 

문제는 아이가 두장을 다 읽지 못하고 아이 한 줄, 나 한 줄 소리 내어 읽고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한국 학교 가려면 알아야 해

나는 한국학교 안 가요. 나는...

해외 유수의 대학은 모두 읊는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그런데 기분 왜 이렇게 좋아?


아이가 대성통곡을 하니 마음이 약해진다.

이렇게 싫어하니까 보내지 말까...



아이가 6살 때 외국에 나왔다.

아이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를 보니 학교만 보내 놓아도 어느 순간 원어민처럼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좀 다르기는 한가...?

그때 아이들 반에는 외국인이라곤 우리 아이들만 있는 지방 중소도시로 갔기에 100% 스페인어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막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학교가 영 재미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

수업시간에 잠이 들기 일쑤였다.

그리고 아침마다 울었다. 학교 가기 싫다고

그렇게 한 세 달을 울었고

그래도 나는 아침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보냈고, 

선생님 말을 들어보니 학교에서는 울지는 않는다고 했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아이를 위해 선생님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짧은 한국어를 몇 마디씩 해주셨고

아이는 맨날 엄마는 언제 와요? 를 물었고

선생님은 매일 들으니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서는

엄마는 금방 와~

라고 대답해주셨다고 한다. 

고마운 아이의 첫 선생님, 케빈


그런 상황이니까 우리는 아이의 영어 실력 늘리기에 신경을 써서

영어책을 읽히고 집에서도 영어로 말하고 그랬다.


한국어가 걱정이 안 된 것은 아니었으나

첫째와 둘째를 보면, 한국 돌아가면 아이들의 한국어는 빛의 속도로 돌아왔으므로 

또한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외국 생활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좀... 다르다.

아이는 영어로 말하는 것이 한국어보다 훨씬 더 편하고

영국 학교를 다닐 때는 본인인 영국인인지 알고,

지금 미국식 영어를 쓰는 학교에서는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한국어를 가르치려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가면 "조국 체험 학습"이라는 고마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를 여름마다 한 달씩 한국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져서 학교에서 안 받아주었고

그 이후에는 한국 집 근처의 학교가 과밀학급이라 받아줄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아이를 주말 한글학교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주말 한글학교란,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국민 및 한인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에게 한글을 익히고 한국 문화와 역사 등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며

수업료는 (정부 한글학교 지원금이 있고) 학생이 부담한다.

주말 한글학교를 두 나라에서 보내보니

수업시간은 보통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4시간 정도 진행하고

예전 주말학교는 간식을 싸오라고 해서 주말학교 다녀온 날은 다른 아이들이 준 귀한 한국 과자와 사탕들이 아이 가방에서 나오곤 했는데

라오스 한글학교는 간식을 제공한다

지난 번은 김밥 한 줄, 이번은 왕만두 2개 이렇게 주신 것을 알고 

이제 한글학교 가는 토요일 아침은 가볍게 먹여서 보내고 있다.

나는 먹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라, 이 부분 굉장히 감사할 따름이다.

배우는 내용은 한국의 학년에 맞추어 수학과 국어 교과서를 제공하고 그 내용을 배운다.

예전 주말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 한 학년에 한 반이었는데

라오스 주말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인지 두 개 학년이 합반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대성통곡을 해서 잠깐 마음이 흔들렸으나

마음 굳게 먹고 한글학교를 보내기로 한 이유는 다음의 3가지다.


1. 한국사람으로서의 정체성

나도 한국에 갈 때면 내 나라 한국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곤 한다.

외국에서 오래 사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문제겠지만

인생의 반을 외국에서 산 아이는 정체성의 혼란이 더 크게 오지 않을까...


굳이 한국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그냥 아이가 세계인으로 살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해 본 적도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는 뿌리가 제대로 있어야 세계인으로서 떠돌지 않고 굳건히 어디서도 살지 않을까..라고 결론 내렸다.


2. 한 마디라도 듣고 오겠지.

주위에 한국 어른들, 한국 아이들만 있으니 

한마디라도 한국어로 더 듣고, 대답해야 할 때는 한국어로 할 수밖에 없겠지.


3. 토요일 오전 시간에 뭐라도 하겠지.

어차피 토요일 오전 시간에 한글학교에 안 간다면 늦잠이나 자고  버리는 시간일 텐데

한글학교에 가면 뭐라도 배우고 오겠지.

나는 아이의 한국어를 부여잡아 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리 늦지는 않았겠지. @http://host.tistory.com/36

네가 학교 안 가겠다고 세 달을 운 녀석인데

지금 이렇게 잘 다니잖아.

한글학교도 처음이라 모르겠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곧 그 속에서 작은 재미들을 발견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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