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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Jan 22. 2023

[라오스 일상] 결혼 20주년

라스베가스? 리마인드 웨딩?

결혼한 지 10년 즈음되었을 때 우리는 라스베가스에 있었던 거 같다.

그때는 결혼 20주년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당시 라스베가스는 너무 블링블링했으며 속성 결혼식도 가능했기에

우리 결혼 20주년에는 꼭 다시 라스베가스에 와서 리마인드 웨딩을 하자

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결혼 20주년이다.

나의 오늘은 이러했다.


주말학교를 가기 싫다고 찡찡대는 녀석을 겨우 깨워 학교에 데려가고, 

요즘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의 주말학교 라이딩을 남편에게만 맡겼었는데 엄마가 얼굴도 안 보여 아이가 친구를 못 사귀나 싶은 마음에 오랜만에 학교에 아이와 함께 내려 아이가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좀 지켜봐 주고

아이가 뒤로 좀 쭈뼛쭈뼛하는가 싶으면

그중 가장 잘 챙길 것 같은 아이에게 "우리 00 이도 같이 데려가 줘" 한 마디쯤 해 준 후,

아이의 수업 시작한 후 


주말 학교 근처의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토요 유기농 시장으로 갔다.

마침 김치가 다 떨어져 배추도 사고, 무고 사고, 과일이랑 야채, 쌀 20kg까지 정말 차 뒤트렁크가 한가득이다.

나는 이 토요 유기농 시장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유기농 제품처럼 유기농이라고 가격이 아주 높은 것도 아니고 잘만 비교하고 산다면 오히려 가격이 낮은 것도 많다.

거기다가 아주 싱싱하다. 오늘은 그 싱싱함이 극에 달했는데... 마치 야채들이 나 좀 사가라고 아우성을 치는 듯했다.

우리나라 마트의 야채들은 참 예쁜데, 굳이 비교를 하자면, 성형미인과 같은 느낌이라면

이곳 유기농 시장의 과일과 야채들은 생긴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본인 생긴 것에 대하여 자신감 없는 그런 얼굴이 아니라 못 생겨도 자신감이 뿜뿜이어서 오래 볼수록 예뻐 보이는 사람... 

그런 야채들이다.

오늘 산 무는 어찌나 길고 꼬브라져 있는지, 처음에는 안 사려고 했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잘생긴 무가 없길래 사서 집에 와서 씻어보니 무가 너무 부드럽고 속에 심도 없다.

배추는... 크기가 우리나라 배추의 한 5분의 1 정도 되려나? 여기는 큰 배추는 없다. 그런데 배추를 절이려고 반을 가를 때마다 긴장의 연속이라 자꾸 쉬어가게 된다. 중간중간 나오는 배추벌레 때문이다. 결국 그 배추벌레들을 내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고 남편에게 넘기면 남편은 너무 심하면 그냥 버리고 어느 정도 먹을 수 있으면 잘 씻어서 나에게 다시 주었다.

그런데 배추 씻던 남편 왈

이렇게 빠른 배추벌레는 첨 봤다.

배추벌레들 살기에도 유기농 배추는 천국인지라 힘도 세고 활기가 넘치나 보다.


학교 끝난 아이 데리고 오고 점심 준비해서 먹고 한 시간마다 배추 뒤집어 주고

아들이 권한 책 좀 읽자 저녁이 되었다.



사실 우리 남편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고, 이벤트의 "ㅇ"과도 관련이 없는 정말 노 무드인 사람이기에

어느 정도 살다 보니,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내가 콕 찍어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당일날 말하면 안 되고

한 일주일 전부터

다음 주 00일은 우리 기념일이고, 나는 빨간 장미꽃 5송이와
00 백화점 000 매장에서 파는 25번 귀걸이를 갖고 싶어.

라고 한 10번 반복을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반복을 할 때마다 남편은 처음 듣는다는 듯,

그랬어? 한다.


어쨌든 20주년이라 한 일주일 전부터 노래를 불렀고 우리는 메콩강이 보이는 루프탑의 한 카페에서 아이들은 안 데리고 우리 둘만 저녁 시간을 보내기로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이런 느낌 있잖아~

그런데, 내가 탈이 났다. 어제 라오스 놀러 온 동생에게 맛있는 샤브샤브 뷔페를 맛 보여 주고 싶어 같이 간 것이 화근이다. 아니다... 뷔페라는 음식 자체가 화근이다.

처음 가는 곳도 아니건만... 동생의 창의성이 어찌나 좋은지

원래 먹던 만큼 샤브샤브를 배 터지게 먹었건만, 

동생이 즉석으로 스프라이트에 라임을 가득 짜서 제조한 라임스프라이트의 상큼함이 느끼함을 어찌나 잘 잡아주던지...

거기다가 마지막에 남편이 가지고 온 완전 불량식품 같은 동그랗고 갈색 과자는 맛만 본다 하였는데. 우리나라 새우깡 그 감칠맛과 아삭함이 똑같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아이스크림... 뷔페집의 노랗고 파란 아이스크림은 아이들이나 먹는 거잖아. 그런데 동생이 가지고 온 샛노란 아이스크림은 두리안 아이스크림이었던 것이다! 근데 두리안을 많이 넣었는지 맛도 진해. 우리는 

이거 귀한 거야

하면서 또 먹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부터 어찌나 배가 아프던지...

이제는 이렇게 무턱대고 많이 먹을 나이가 아닌가 보다.

그래서 말은 안 했지만 더 외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에 절인 배추로 조금은 겉절이 해서 먹고 나머지는 김치를 큰 통 한가득 담가 흐뭇한 찰나

남편이 우리의 밤 이벤트는 완전히 잊고 운동을 가잖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헬스에 가서 운동을 했다.

오늘따라 헬스가 너무 한산하여 운동하기가 좋다.


땀범벅으로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아이들 건강하고

우리도 건강하고

부모님도 다들 건강하시고

그러면 되었다.


30주년도 오늘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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