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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Feb 15. 2023

[감사하는 삶] 이주망

이번 주재원은 망했다...

바야흐로 해외에서 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엄마라면 2,3,4월은 매의 눈으로 여러 학원의 정보를 확인해 얼리버드 적용으로 조금이라도 할인받아 아이가 한국에서 다닐 여름 방학 학원을 치열하게 알아보는 기간이다.

그리하여 몇 군데 전화를 돌리며 학원 프로그램을 문의해 보는데

상담하는 학원 원장님이 라오스에서 산다고 했더니, 

그곳에서는 공부 좀 한다고 해도 시골동네에서 쫌 하는 정도입니다.
진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못 봤을 거예요



한다.

학원에서 권하는 몇 가지 프로그램의 선택을 주저했더니

당연히 주저하지. 프로그램 하나에 얼만데 몇 개를 권하니?...;;

주재원들 사정 다 뻔한데...

라며 우리들의 뻔하디 뻔한 주머니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듯이 말한다.


조금 빈정상하지만,

그래도 좋은 정보를 얻었다고 자위하며

나름 예의를 갖추어 학원 원장님과의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학원 원장님이 위로를 한답시고,

제가 고민만 드린 것 같네요.
그래도 시골에서 그 정도 키우시면 잘하신 겁니다.

저는 시골을 좋아합니다. 하하하

라며 화통한 척 보내 온 메세지에 대답을 했지만

이것 참,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인데

씁쓸하다, 씁쓸해.


보통, 주재원 아빠는 일하느라 힘들어도

주재원 와이프는 골프 치며 여유롭고 세상 재미있게 지내던데...

나는 이번 생활이 재미가 없다.


골프를 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있었다면, 아직도 나를 기다려주는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철마다 예쁜 옷 사서 입고 일하며 나의 커리어를 쌓고 친구들 만나며

바쁘고 버라이어티 하게 지냈을 텐데


이곳은 사시사철 여름인 데다가 별로 나갈 일도 없으니, 

세상 편한 짙은 반바지에 어두운 색 티셔츠 몇 개면 일 년을 난다. 

참, 겨울이라고 불리는 12월, 1월에는 가끔 얇은 카디건이 필요하긴 하다;;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어 지원하는 곳에서는 심지어 서류심사에서 떨어지고

좁디 좁은 교민 사회에서 몇 번 사람에게 상처받았더니,

막 적극적으로 사람을 사귀지도 않게 된다.

아이들도 웬만큼 커서 저만의 시간이 더 소중하고, 

오늘 학교 어땠니? 물어보면 나에게는 그냥 그랬어요 라며 무뚝뚝하게 대답하지만

친구에게는 미주알고주알 다 말한다.


와이프가 이렇게 고전하고 있을 때

남편은 본인 업무의 전문성을 공고히 쌓아가고 있다.


오늘 우연히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을 만났다.

유럽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데, 너무 생활이 단조롭고 심심하단다.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잊을만하면 밀고 들어온다.

남편 여기 두고, 나는 한국 가서 일하고.


그런데... 결정적으로 

요즘은 3년 특례 조건이 더 까다로워져서

2020년부터 학생의 부모는 1년의 2/3 이상, 
지원자 본인은 1년의 3/4 이상을 해당 국가에서 체류해야 한다.

라는 사항이 명시되어, 내가 한국 가면 아이는 그나마 3년 특례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된 이상,

아침에 아이들 도시락 반찬 한 가지라도 더 고민해서 싸주고

가족들 집에 왔을 때 따뜻한 밥 준비해 주고

그 와중에 내가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공부도 하고 

헬스로 흐들흐들한 몸에 근육 좀 만들고


자그마한 것,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도 우리 집 망고 나무에서 노랗게 익은 망고가 2개 떨어져서 망고 2개 값을 아꼈고, 

아들과 남편이 저녁 먹은 후 후식으로 하나씩 후루룩 잘 먹을 것이며

아들이 어제 밸런타인데이라며 자기가 받은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나에게 줘서 식탁을 지날 때마다 

꽃병에 얌전히 놓인 빨간 장미를 보게 된다는 것. 

에 미소 지으며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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