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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Mar 27. 2023

5일간 헬스에 출근도장 찍는 이유

그리 뚱뚱한 편은 아니지만 콜레스테롤이 높다.

비실비실 대는 정도는 아니어도 몸이 점점 흐믈흐믈해지는 느낌이 여실하다.

무엇보다 요즘... 좀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예전에 끊어두었던 1년 회원권 헬스를 좀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콜레스테롤과 말벅지 말고 헬스를 가야만 하는 이유가 오늘 또 하나 추가되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헬스를 오래 다니지 않은 나 같은 헬린이들은 다른 운동기구들을 잘 모르니 러닝머신을 많이들 한다. 

나는 보통 걷기부터 시작해서 속도 8km로 25분 정도 뛰는데 이게 참 지루하다. 

이 지루함을 어떻게 견뎌볼까 하다가 넷플릭스를 보면서 달려보니 괜찮았다.

가끔 의도치 않게 19금 장면이 나오면 뛰다가 옆 사람의 눈치를 살짝 보면서 그 장면을 후다닥 넘겨야 하니 그것이 조금 불편한 정도...

그러다가...

라오스어 수업에서 배우는 양이 쌓이면서 복습하지 않으면 과외선생님 용돈벌이만 해주는 격이지 

내가 실제 얻어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 여실하기에.. 

배우는 단어들을 정리해서 러닝머신을 하면서 보기 시작했다.

배운 단어 리스트를 달리는 동안 살짝살짝 눈으로 보는 단순한 행동을 한 달 넘게 했을 뿐인데...

그 효과가 생각보다 놀랍다.

함께 배우는 남편보다 나의 진도가 저만큼 앞서 나가고 남편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용을 나는 대답을 해내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 라오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도찐개찐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남편보고 복습 좀 하라고 구박을 하는 오버를 하고 그랬다.


약 4개월 전 내가 잘 썼다고 착각하면서 학술지에 자신 있게 낸 논문은 "수정 후 재심"이라는 결과와 함께 

구구절절 맞고, 나를 콕콕 찌르는 기나긴 논문 심사서 3편을 아래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보내왔다.


2020년 8월 12일 개정된 규정에 따라 '수정 후 재심'으로 평가된 논문은
다음 호 투고 마감일까지 수정 논문이 제출되지 않은 경우
'게재 불가'로 처리됨도 함께 안내해 드립니다.


다음 호 투고 마감일이 이제 5일 남았다.

아무리 논문 심사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논문을 수정하려고 빨간 팬도 써보고 형광팬도 쫙쫙 그어 보지만 

참 진도가 안 나가고 하릴없이 시간만 간다.

오늘은 마침 준비해 둔 라오스어 단어장이 안 보이길래

논문 심사서를 러닝머신에서 달리면서 읽었는데

이게 웬걸.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나는 뛰는 동안 아이디어를 머리속으로 두세번 정리한 후 달리기를 마치자마자 리셉션에서 볼펜을 빌려 내용을 일필휘지 써 내려갔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운동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를 MRI로 비교해 본 실험에서,
뇌 엽과 엽 사이의 연결이 더 강화되고 특히 측두엽이 이마옆, 뒤통수옆과 이루는 연결이 강화됨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뇌의 서로 다른 영역들이 더 잘 통합되어 뇌라는 기관 전체가 더 효율적으로 기능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오래 운동을 한 사람도 아니고 

객관적인 어떠한 실험의 결과는 더더욱 아니지만

달리기라는 육체적인 과정 동안 뇌의 정신적 활동이 더 활성화 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깨달은 현상이 너무나 놀라워

학습의 대 비밀을 곧 입시를 준비하는 아들에게 바로! 알려주었다.


아들 왈,

엄마, 엄마는 달리기를 왜 하시는 거예요?

얼마나 천천히 달리면 그게 가능해요?

효과도 없는 달리기 그만하시고 근력운동이나 하세요.


참... 안타깝다...

암기하기 어려운 영어단어 10개씩만 러닝머신하면서 외우면 넌 그냥 영어단어시험 100점인데...

아무리 세상의 대 비밀을 알려주어도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은 모르는 거지...


그나저나

앞으로 5일간 헬스에 출근도장 찍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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