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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ChoiceIsMine Apr 16. 2023

구질구질하게 면접 실패하기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곳의 채용 공고가 났다.  

처음 공고가 났을 때는 내가 마음에 두었던 그곳이 리스트에 없었는데 추가로 난 몇 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지원서를 잘 썼다. 몇 번을 고쳐 쓰고  중간중간 심사자들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유머 코드도 살짝 집어넣고 이력서의 특성상 잘난 척을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혹시나 오탈자 및 띄어쓰기 실수가 있을지 몰라 맞춤법 검사기로 최종 확인하였다. 

서류전형에 합격했으며, 온라인 적성검사도 지원자로서 크게 무리가 없었으리라 여겨진다.

문제는 면접이었다.


금요일, 토요일 양일간 진행될 예정이었던 면접이 토요일 하루로 변경되면서 내가 6개월 전에 사두었던 비행기 표의 돌아오는 12시간 반 비행 여정 중 딱 가운데 즈음에 나의 면접시간이 잡혀버린 것이다. 12시간 반 비행시간에서 알 수 있듯 꽤 긴 노선이라 표는 비쌌고 스케줄을 변경할 수 없는 표였다.

면접시간이 정해지자마자 나의 사정을 설명하고 면접 시간을 변경해 주실 수 있을지에 대한 이메일을 구구절절 썼다. 하지만 면접시간을 변경할 수 없다는 공손하지만 확실한 답변이 돌아왔다. 

언뜻 가는 비행기에서  와이파이 싸인을 본 기억이 나서 검색을 해보니 사용한 시간당으로 지불하면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다시 비행기 내에서 면접을 보겠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지원한 곳에서는 온라인 줌 주소, 시간을 알려주면서 온라인 면접은 가능하나 안정적인 면접 환경 확보에 대한 의무는 지원자 본인에게 있음을 알리는 안내를 보내주었다.

그렇지. 이 말은 맞지…


이렇게라도 면접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불안정한 인터넷 환경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맞다.


면접을 며칠 앞두고 나는 아이와 함께 아이 대학교 도서관에 갔다. 이 면접은 기술면접을 보기 때문에 기존의 면접 기출문제들을 보고 준비를 해 두어야 했다.  밤늦은 시간 시험공부를 하는 아이 옆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니, 다시 대학교 때로 돌아간 듯하기도 하고.. 뭐 그랬다.

눈이  뻑뻑해지고 피로감이 마구 몰려올 즈음에야 면접을 위한 내용 준비는 거의 다 되어서 아이에게 출력을 부탁했다.  

아이의 학생 아이디로 출력을 한 종이를 건네주는데.. 아이가 많이 컸구나 새삼 느낀다.

도서관에서 나와 아이와 손을 잡고 맑은 밤하늘과 별을 보면서 방으로 걸어왔다. 


드디어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고, 또 면접을 보는 날이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스튜어디스에게 오늘 새벽 4시에 아주 중요한 인터뷰가 있으니 와이파이를 사용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조용한 공간이 있을지에 대하여 문의를 했다. 새벽 4시에는 대부분의 승객이 잘 시간이라 조용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비행기의 가장 마지막 자리가 비어있으니 거기서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비행기는 이륙하고 “치킨 or 피시?” 비행기 식사도 맛있게 하고 기내 불이 꺼지고 대부분의 승객은 잠을 자고 누군가는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독서등을 켜고 출력해 간 인터뷰 준비 종이를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너무 졸려서 알람 맞추고 한두 시간 잠이 들었고, 다시 깨서 종이를 최종으로 읽으며 면접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새벽 4시가 되었다. 면접에 필요한 컴퓨터, 이어폰, 핸드폰, 신분증 등을 챙겨 스튜어디스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 맨 뒤로 가는데, 어라 맨 뒷자리에서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다. 

원래는 빈자리인데 몇몇 승객이 편하게 잠을 자러 뒷자리로 옮긴 것이다.

스튜어디스에게 와이파이 사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와이파이를 연결법을 설명해주는데 와이파이 연결  후 홈페이지로 들어가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인터넷으로 항공사 홈페이지 통해 미리 확인했던 것은 시간당 결제였다. 

한 시간에 12달러, 두 시간에 15달러 정도, 24시간 사용은 20달러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막상 결제를 하려고 하니, 데이터 사용량 당 결제 시스템이었다. 100  MB는 10불 정도 (단 메시지 사용 정도만 가능하며, 영화와 같은 데이터 스트리밍 불가)였고 300 MB는 20불 정도 (역시 메시지 사용 정도만 가능하며, 영화와 같은 데이터 스트리밍 불가),… 맨 마지막 패키지만 데이터 스트리밍이 가능했고 40불이었다. 화상 회의를 위해서는 가장 마지막 패키지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스튜어디스들은 고맙게도 나를 위해 그들의 공간을 내어주며 정말 조용히 해 주었다.

카드를 꺼내 와이파이 구매까지 마치고 나니 새벽 4시 15분. 예정 면접시간인 4시 20분에서 5분이 남았다. 

이제 줌 코드로 연결! 을 눌렀다.

화면에 연결을 알리는 동그라미가 계속 돌아간다. 

정말 한참 돌아가더니 “Unabla to Connect” 메시지가 뜬다.

이 메시지가 떴을 때 나는 Unable to breath

메시지에 뜬 대로 파이어월이나 프락시 문제일 수 있어 설정에 들어가 파이어월과 프락시 조정을 모두 다시 확인하였고 문제는 없었다. 시간은 벌써 면접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다시 줌 코드 연결

그러나 마찬가지로 연결 불가.

스튜어디스가 그날 인터넷 사정에 따라 잘 안될 수도 있다는 언질을 미리 줬기에 몇 번을 시도했다. 그러나 역시 같은 메시지가 뜰뿐이다.


줌 연결을 제외한 Daum을 본다던지, 이메일을 보낸다던지, SNS을 한다던지 하는 인터넷 활동은 모두 가능했다.

그래서 회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지금 계속 노력을 하고 있는데 위와 같은 메시지가 뜨고 연결이 안 된다. 나의 면접 시간을 변경해 줄 수는 없는 거니?라고.

이제 벌써 예정 면접시간이 한 시간은 지나 있었고 이메일을 보내고 난 후 답장은 오지 않았고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혹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인터넷 사정이 극적으로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한 30분쯤 있다가 다시 줌 코드를 연결했더니 이 와이파이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Attacker 가 니 컴퓨터를 공격할 수 있다 굵고 빨간색의 알람이 뜬다.

나는 깜짝 놀라 컴퓨터를 닫았다.


면접의 날짜가 하루만 빨랐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하루만 늦었다면 어땠을까...

면접 시간을 가장 마지막 시간으로 조정해 줬다면 어땠을까...

왜 하필 이 날 이 시간에 면접 시간이 잡혔을까…

내 머리는 계속 what if… 가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나는 40달러짜리 인터넷 패키지까지 샀다고.


컴퓨터의 Attacker 빨간 글씨를 본 후 나는 더 이상은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편하게 한 두 시간 잤나 보다.

자고 났는데도 도착까지 2시간 반이 남아 송강호, 강동원과 아이유의  브로커를 한 편 보고,  또 막 넘기다가 초고도 비만 온라인 영어 선생님이  삶의 마지막에 딸과의 관계를 되살려 보려고 노력하는 영화 더 웨일을 보게 되었다. 비행기는 공항에 도착해서 다른 승객들은 일어나서 내리려고 짐을 챙기는데, 나는 여전히 영화를 보며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브렌든 프레이저, 세이디 싱크 그리고 홍차우, 연기 왜 이렇게 잘해! 

시간관계상 영화를 반 밖에 못 봤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마저 보고 싶다.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고 주인공이 그렇게 뚱뚱해진 어떤 이유나 남자친구의 죽음에 대한 설명이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Whale 은 고도 비만인을 지칭하는 비속어. 브렌든 프레이저의 저 눈빛 봐~

집에 도착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저녁을 먹고, 저녁 9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12시간을 내리 잤다.

비행기에 탔을 때부터 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성에 대한 긴장이 쌓였던 탓이리라.


내가 지원했던 곳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안 되는 걸 되게 해달라고 떼쓰는 구질구질한 지원자로 볼까? 


지원서를 쓸 때부터 합격해서 이곳에서 일을 할 꿈을 꿨던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니 아쉬움이 있지만… 

뭐 어쩌랴.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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