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상처는 한두 살쯤 되었을 때 엄마 따라 식당에 갔다가 식당 냄비에 하체 전체가 빠져서 생겼다. 끓는 냄비에 어린아이가 빠진 사건. 그날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로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마땅한 병원이 없었다고 한다. 근처 작은 김옥상 병원이라는 곳에서 눈만 빼고 몸 전체를 붕대로 감았던 기억이 난다. 화상에 의한 상처는 오랫동안 남았다. 찌그러진 엉덩이, 스타킹을 떼어내면서 살이 일어났던 상처들. 다행히 엉덩이는 보이지 않았고, 종아리는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여름이면 짧은 바지를 입고 싶었지만 나는 3부 이상을 입을 수 없었다. 엉덩이의 상처가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에는 종아리의 상처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한여름에도 긴 체육복을 입고 체육시간을 활보했다. 몇몇 아이들은 그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따라 하기도 했다. 나는 나의 감정을 들키지 않으면서 그렇게 상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나를 속이면서 지냈다. 하나 혼자 있을 때면 찌그러진 엉덩이가 아닌 예쁜 엉덩이, 종아리를 상상해 보면서 나를 공격했다. 왜? 나는 이렇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많을까. 사춘기에는 외모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 시간이 더 힘들었다. 누군가 너 다리 왜 그래?라는 질문이 두려웠다. 질문에 대한 답을 수십 번 집에서 연습하고 학교로 향했다. 누군가 질문이라도 하면 연습한 대로 쿨하게 대답했다. “어릴 때 다쳤어.” 친구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상처에 대한 마음도 괜찮아졌다. 특별한 날 치마를 입고 싶을 때 말고는.
두 번째 상처는 머리에 있다. 가로 세로 2cm 정도 되는 동그란 상처는 바람이 불 때면 드러난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었지만 머리의 상처 때문에 항상 머리를 길렀다. 이 상처는 첫 번째 상처가 생기고 전신에 붕대를 감고 있을 때 생겼다. 엄마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다가 문지방에서 넘어져 연탄불에 닿으며 생긴 상처다.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고 동그란 모습이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다.
고등학교 때 원형탈모인 줄 알고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교무실로 부른 적도 있다. 어릴 적 다쳐서 생긴 상처라는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교실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뒤통수에 있다 보니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나는 항상 머리카락을 잡아야 했다. 상상을 해보라 바람이 나의 머리를 날려 보내자 동그란 모양의 상처가 드러나 나를 부끄럽게 했다. 사람들이 상처를 보면서 나에게 말을 거는 게 싫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유난히 모자를 좋아했다. 모자를 쓰면 바람이 불어도 신경 쓸 필요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어릴 적 소풍 사진을 보면 항상 모자를 45도 돌려써 얼마나 개구장이였을지 상상이 간다. 표정은 역시 그에 걸맞게 자신감 가득이다.
이제는 그 상처들도 안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보다 마음에 상처가 더 깊고 아프다는 걸 알기에 혹여나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까 싶어 관찰하고 기다려주며 들어준다. 이 깨달음은 엄마가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쌓이다가 10년이 지나자 단단해졌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