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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Jan 26. 2023

눈 오는 날

모녀의 눈 이야기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눈이 내린다.

바닥을 보니 제법 눈이 쌓였다. 잊지 못할 추억이 문득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강원도 고모 댁에 갔다가 폭설로 인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눈은 밤사이 2m 넘게 쌓여 있었다. 어른들은 눈 치울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서로를 마주 본다. 눈빛대화를 마친 4명의 아이들은 동시에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눈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는 것은 땅굴을 파는 것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 앞에 보이는 것은 하얀 눈뿐이었다. 지금 파고 있는 곳이 길인지 알지 못한 채 반복해 길을 내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길이 완성되자 우린 누가 더 멀리 눈 위로 점프할지 내기를 했다. 준비 땅! 소리에 맞춰 달리기 시작한다. 마지막 눈 위로 점프할 때의 긴장감, 눈이 안전히 나를 받아주던 포근함, 우리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까지 하얀 세상에 울려 퍼졌다. 조용하던 하얀 세상엔 금세 생동감이 넘쳤다.

이번에는 편을 나눠 눈싸움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눈을 던지다 보니 내편인지 상대편인지 구분 없이 다 같이 공격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 눈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본다. 우리의 숨소리만 울려 퍼진다. 찬 공기와 함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눠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한 팀은 눈사람의 아랫부분을, 다른 팀은 눈사람의 윗부분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우리보다 큰 눈덩이가 만들어졌다. 커다란 눈덩이를 어떻게 올릴지 고민이었다. 사촌언니가 어디로 뛰어간다. 잠시 후 언니는 고모부와 함께 왔다. 고모부와 함께 우린 커다란 눈덩이를 올려 눈사람을 만들었다. 이번엔 눈, 코, 입을 꾸밀 차례다. 눈은 병뚜껑, 코는 다 쓴 색연필, 입은 나뭇가지, 팔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다. 눈사람이 추울까 봐 염려되었던 우리는 목도리도 둘러 주었다. 그 당시 사진기가 있었다면 이 모습을 모두 담아 두었을 텐데. 다시 볼 수 없어 아쉽다.


아이 뒤편에 이글루가 보인다.


 2014년 2월 강원도 강릉에는 1.5m의 폭설이 내렸다. 당시 인천으로 이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폭설로 인해 우리의 이사는 늦춰졌다. 대신 아이와 함께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눈사람을 만들러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많이 내린 눈에 아이의 두 눈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는 앞으로 돌진하며 소리를 질렀다.


  “와아!!!”


 함께 스노볼 메이커를 이용해 미니 눈사람도 만들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이글루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소꿉놀이도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많은 눈을 본 건 처음인 아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엄마가 눈 침대에 누우면 포근하다는 말에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엄마가 먼저 눈 침대에 몸을 던지자, 아이도 엄마를 따라 몸을 던져본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조막만 한 손으로 눈을 뭉치더니 엄마에게 던진다. 아이와 함께 신나는 눈싸움시간이다. 그날 아이는 정말 많이 웃었다. 아이가 행복해하던 순간이다.




눈이 오는 날이면 아이는 지금도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이야기를 한다.

“엄마, 그날 정말 재밌었는데.”

“태어나 그렇게 많은 눈은 처음 보았던 너의 표정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대신 그날의 사진이 아직 몇 장 있잖아. 이 모습만 보아도 너무 좋아.”

아이가 어릴 적 자신의 사진을 보며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한다. 아이는 눈 내리는 날이면 모녀의 신나는 눈놀이 시간을 떠올릴 거다. 행복한 기억은 버거운 삶 속에 잠깐의 휴식 같은 미소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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