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난 것은 중학교 때다. 유난히 글을 잘 쓰는 그녀가 내 눈엔 멋져 보였다. 친구가 되고 싶다는 강한 이끌림에 의해 용기 내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우리 친구 할래?
그녀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어 매일 편지를 주고받았다. 공부로 힘들 때마다 그녀와 주고받은 편지는 나를 위로했다. 함께 같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밤늦게까지 독서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서로 깨워 주고 응원하며 각자의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비밀친구였다. 언제부터인가 매일 스누피에게 편지를 쓰고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전하지 못한 편지도 많았다. 그녀는 나에게 또또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우정을 쌓아갔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지만 우린 같은 학교를 갈 수 없었다.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얼마나 속상해했던가. 그 이후 서로의 공부 일정으로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편지는 계속 주고받으며 우리의 우정을 나누었다.
우린 자신의 꿈을 향해 각자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그녀와 또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서울로 올라갔고 나는 고향에 남았다. 그녀의 결혼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축하를 해 주었다. 어릴 적 스누피와 또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나의 아픈 소식에 누구보다 속상해하며 울먹이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들린다. 아이의 돌잔치 소식에 먼 거리를 달려와 축하를 해주던 게 그녀다.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와 아이의 아픔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 것도 그녀다. 아이 생일날 출산하느라 고생한 날이니 축하받아 마땅하다며 축하금을 보내 나를 감동시켰던 것도 그녀다. 꼭 나를 위해 쓰라며 신신당부하던 마음 깊은 친구 스누피. 오늘은 그녀가 몹시 보고 싶다.
그녀의 얼굴을 못 본 지 벌써 8년째다. 올해 꼭 만나고 싶은 사람 1순위로 스누피를 적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녀도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보자는 답을 보내왔다. 시간 날 때마다 통화를 하지만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그녀를 보고 싶다. 함께 고민을 나누며 청소년기에 유일하게 마음의 친구가 되어 준 그녀. 그녀와의 통화는 나를 생동감 있게 만들고 꽤 괜찮은 사람으로 만든다. 이제 그녀를 만나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그녀와 만나는 꿈을 자주 꾼다. 사실은 꿈인지 나의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한번 자면 깊게 자는 편이라 꿈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여울 선생님의 과제로 깊이 고민하다 보니 그녀가 나의 꿈에 등장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22년 꼭 만나고 싶은 10인 중 1위인 스누피. 따뜻해지면 그녀를 만나러 갈 거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나는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걸어올지 벌써 상상이 된다.
나의 영원한 친구 스누피! 곧 보자!
- 2022년 3월 9일 -
스누피와 또또 드디어 만나다
나의 영원한 친구, 스누피를 만난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설레고 있었다. 너에게 선물할 책과 어린 시절 너에게 받았던 편지를 챙겨 두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이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잊고 있던 너와 나의 청소년 시절을 선물해 본다.
드디어 너를 만나는 날이다. 광명역으로 향했다. 주말답게 많은 사람들로 주차공간이 부족했다. 30분가량의 기다림 끝에 겨우 주차를 하고 너를 만나러 간다. 도착했다는 너의 말에 우린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 낯선 장소에서 서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엇갈림 속에서 다시 통화를 했다. 너는 내가 서있는 곳 근처에 있었다.
"혹시 회색 코트를 입었니?"
"응, 너는 어떤 옷 입었어?"
"나 너 찾았다. 핑크색 코트 입고 있어. 뒤돌아 봐 봐."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움에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며 포옹을 했다. 그녀의 따뜻한 온기가 손을 타고 나에게 전해졌다. 아줌마가 된 우리는 길거리에서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옆에 있는 벤치에 않아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소를 옮겨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건널목 너머에 카페가 보인다. 그녀와 못 만났던 8년의 이야기를 듣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10대에 만난 우리는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지나 두 아이의 엄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 아이들을 통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준비한 선물을 건넨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엄마의 어린 시절로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엄마도 아이도 잊지 못할 행복한 여행이 될 거다.
그녀가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나의 손을 잡는다.
"고맙다, 친구야!"
그녀는 언제나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공감의 끄덕임을 전했다. 덕분에 그녀와 통화를 하고 나면 항상 기분이 좋았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이었다. 사춘기시절 나의 비밀친구, 스누피와의 짧았던 5시간의 만남. 아쉬움 가득했지만 잠깐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앞으로 1년에 꼭 한 번씩 보자는 다짐과 함께 바로 모임통장을 개설했다.
못 만나는 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아준 친구에게 고맙다. 지금껏 엄마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하며 지낸 친구에게 이 말을 건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