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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Jul 27. 2023

이런 알바 해봤니?

낯선 경험은 저절로 웃게 한다

아이들의 방학으로 일상에 여유가 생겼다. 새벽루틴 후 아침을 차려주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휴대폰이 울린다. 이웃친구 미영이다.

“언니 뭐해요?”

“커피 마시는 중이야.”

“언니 알바 할래요?”

뜬금없이 알바라니 무슨 얘기일까. 미영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자신의 말만 쏟아낸다.

"시화공단에서 제품을 확인하는 단순 노동이지만 시간이 길고 야간 수당도 있어서 20만 원은 족히 벌 수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데 일이 있어서요. 꿀알바라 딴 사람주기 아쉬워요."

금액을 들으니 마음이 간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퇴근 몇 시쯤 해요?”

“6시쯤 될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알바하려고요.”

갑자기 알바라는 말에 남편이 놀란다. 설명을 듣던 남편은 계속 웃는다. 할 수 있겠냐며 재차 확인하는 남편에게 아이 저녁을 부탁한다.

 

다음날 8시 시화공단 도착.

시화공단은 컨테이너 같은 모양의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먼저 도착한 하청업체 직원과 인사를 나눴다.  오늘 할 일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선을 검수하는 작업이다. 설명 후 직원은 본인 회사로 갔다. 낯선 공기, 낯선 환경에서 검수작업이 이루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허리통증을 느낀다.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옆에 있던 뽁뽁이를 바닥에 깔고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낯선 시선이 느껴졌지만 우선 내가 살고 봐야 하기에 편한 대로 일을 했다.


관심은 순간이다. 각자 주어진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왔던 일용직 아줌마 일뿐이다. 바닥에 앉아 반복되는 동작을 하자, 멍하다. 빠르게 검수한 끝에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다. 할 일이 없어졌다. 잘만 가던 시간이 멈췄다. 조용히 소리에 집중해 본다. 에어컨은 없고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선풍기는 생산직원들에 차지다. 더위를 이기내는 건 내 몫이다. 공장 안을 둘러본다. 생각보다 직원이 적다. 자세히 보니 자동화 시스템이 이루어지고 있다. 직원들이 버튼을 누르자 로봇이 철판을 내리고 조립을 시작한다. 이후 간단한 부품을 직원이 조립한다. 신문에서만 보던 일들을 눈앞에서 보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딩동댕동

갑자기 울려 퍼지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기계 돌아가던 소리가 멈추고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물어보려고 다가가면 모른척하며 가버린다. 당황한 나는 한 명의 직원을 붙잡고 물어본다.

“다들 어디 가시는 거예요?”

직원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마디 한다.

“점심 먹으러 갔어.”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다. 다시 한번 묻는다.

“그럼 점심시간은 몇 시까지에요?”

“40분.”


시계를 보니 벌써 5분이 지났다.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시화공단 주변에는 먹을 게 없다. 헤매다 보니 벌써 10분이 지났다. 이러다 굶고 일하겠다는 생각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혹시 식사될까요?”

아주머니는 가능하다고 하시며 가격은 6천 원이란다. 반찬은 어묵볶음, 김치, 풋고추, 쌈장, 닭백숙이다. 배라도 채우자는 생각으로 가격을 지불하고 앉아서 먹어보지만 지저분한 비주얼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밥과 어묵을 깨작거리다 그냥 나왔다. 이제 8분이 남았다. 저녁 8시까지 근무라 주변에 혹시 편의점이라도 있을까 싶어 열심히 뛰어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저긴 뭘까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달려갔다. 이마트 편의점 간판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찾았다." 저녁은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물 한 통을 사서 다시 공장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조립한 제품을 검수하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서있자, 직원이 다가와 손짓으로 설명한다. 뭐지. 왜 말을 하지 않는 걸까. 에라 모르겠다. 나도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으로 이렇게 하면 되는지 물어본다. 직원은 오케이를 외친 후 사라졌다. 이후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외친다. “헤이” 그럼 나는 달려가서 확인한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순간 웃음이 나온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한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싸장님.”

하면서 외국인처럼 말하지 그랬냐고 한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를 외국인 노동자로 알고 지냈던 12시간. 말을 하지 않고 오롯이 몸짓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이 세워둔 틀 안에서 타인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체험 삶의 현장 후 통장엔 202.500이 찍혔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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