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성은 9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 일찍 준비해 전철을 탔더니 한산하다. 전철역에서 나오자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덕분에 어제의 피곤을 잊게 해 준다. 역시 자연의 힘은 대단하다. 앞에 낯익은 모습의 두 여자가 보인다. 어제 식당 앞에 함께 줄 서있던 사람들이다. 한 번도 말을 해본 적은 없지만 어제오늘 같은 일정을 짰다는 점에 웃음이 나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자신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건축한 천수각은 멀리서도 화려함에 눈부셨다.
천수각
오사카성의 정문은 고려문답게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타코이시(벚꽃 문)라는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었다. 어떻게 옮겼을지 신기했다. 남편은 오사카성 박물관을 관람하는 동안 배를 예약해 두겠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박물관에서 일본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금을 좋아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황금 다실 먼저 찾기 놀이를 하며 관람을 하자, 박물관이 순식간에 놀이터가 되었다. 역시나 황금 다실은 아이가 먼저 찾았다. 아이는 이름답게 황금으로 되어 있어서 많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바닥이 빨간색이라 더욱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전망대를 구경하기 위해 올라가 보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오사카 모습은 가을스러웠다. 적당한 바람과 살짝 물든 잎들을 보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이다.
"어쩌지?"
"무슨 일 있어요?"
"배 예약이 안될 것 같아요."
"벌써 예약 끝났어요?"
"아니요. 3명이 탈 거면 주유패스 3장을 줘야 하는 데 미처 그 생각을 못했어요."
타고 싶었던 배를 타지 못하게 되자 남편은 많이 아쉬워했다.
"괜찮아요. 당신도 올라와서 오사카 풍경 한번 봐요. 근처에 기차도 있던데 그거라도 타면 되죠."
전망대에서 내려와 기차를 타기 위해 천수각 뒤편으로 내려왔다. 책에서 보았던 각인석 광장이 보인다. 미리 책을 보지 않았다면 그냥 바위라고 생각하며 지나쳤을 거다.
여행은 아는 게 많을수록 더 즐겁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바위마다 각자의 표시가 있었다. 아이와 함께 모양을 보며 누구의 바위인지 찾아보았다. 조금 더 내려오자, 도요토미 히데요리(아들)와 요도(부인)의 자결터가 있었다. 작은 비석만 세워져 있어 많이 초라해 보였다.
기차를 타고 오사카성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조깅하는 사람, 나들이 나온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 덕분에 여행이 더 즐거웠다. 강을 따라서 한 바퀴를 도는 코스는 시원한 바람을 만들며 진짜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 중 가장 여유로웠던 시간이다. 자연을 벗 삼아 주변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덴덴타운으로 향했다. 덴덴타운은 숙소 근처라 짐을 찾기 전에 빠르게 돌기로 했다. 아이가 궁금해하던 애니메이션, 게임, 피규어 등 많은 것들이 입점해 있었다. 이렇게 많은 가차샵이 있다는 점에 놀라울 뿐이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최애의 아이' 굿즈를 사기 위해 열심히 구경했다. 아이는 한 쇼핑센터에 방문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1층엔 만화책 2층에 굿즈를 팔고 있었다. 4층 건물이 모두 애니천국이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선물할 굿즈를 구입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 있지는 못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간사이 공항으로 향했다.
덴덴타운에서 친구들 선물 고르는 아이
일본여행의 소감을 묻자, 아이는 오사카에 일본어를 마스터해서 다시 한번 오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 맛에 해외여행을 온다. 확실하게 동기부여가 된 아이는 세상이 넓다는 것을 느끼며 다음에는 자신이 읽은 책 속 장소에 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남편은 못 먹어본 음식들이 많아 아쉽다며 다시 방문해 모두 먹어보겠다고 한다. 다음에 오면 여유롭게 일본 서점을 구경하고 오사카 사람들이 사랑하는 고칸, 팡듀스, 키타하마 레토로 카페에 방문해 차와 베이커리를 먹을 거다.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곳도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