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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거를 아시나요?

바른 인성교육

by 정미숙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지영이다.

“지영아, 오랜만이네.”

“언니, 오늘 수업 어디야?”

“동탄.”

“잘됐다 언니, 나 좀 봐.”

나 좀 봐. 뭐지 무섭게 자기 할 만만 하고 끊어버린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지영이네 근처로 갔다.

지영은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산책하자고 했다.


“언니”

불러놓고 말이 없다.

“왜 무슨 일인데.”

“정말 속상해. 언니 그거 알아?”

서론도 없이 훅 들어오는 질문에 당황스럽다.

“언니 개거가 뭔지 알아?”

“개거. 그게 뭔데?”

여러 번 한숨을 쉬며 어렵게 말을 꺼낸다.


“개근 거지.”

‘개근 거지’ 이건 또 무슨 신조어인가. 요즘 신조어가 많아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지영이 설명한다.

개근 거지는 학기 중에 체험학습으로 해외여행을 못 가는 아이들을 이르는 말이야. 간단하게 말하면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비하하는 말이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런 말을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하냐고. 속상해. 미칠 것 같아.”

미영은 동탄으로 이사하면서 대출을 조금 많이 냈다. 당장은 여유가 없어 해외여행은 무리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그 말을 듣고 와서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미영은 검색해 보고 기절할 뻔했다며 연신 속상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미영은 답답해하며 묻는다.

"언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미영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미영아,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미영이 오른손으로 가슴을 친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첫째, 무리해서 해외여행을 간다. 둘째, 아이에게 개거에 대해 설명해 주고 그 말은 나쁜 말임을 알려준다. 이후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려 아이들이 올바른 언어를 쓸 수 있도록 안내해 줄 것을 부탁한다. 선택은 오로지 너만 할 수 있어. 어떤 선택을 해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거야."

미영은 결심을 한 듯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원샷한다.




어릴 적을 떠올려 본다. 개근상을 받기 위해 아파도 꾹 참고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난다. 개근상은 근면, 성실함을 대표하는 상이었다. 요즘은 왜 이렇게 왜곡되었을까. 아이들은 이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 부모는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하고 있을까. 여러 질문들이 나를 공격했다.


인성교육이란
마음의 바탕이나 사람의 됨됨이 등의 성품을 함양시키기 위한 교육이다. (N사전)


누군가 상처받을 수 있는 말이라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들은 아직 옳고 그름의 판단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거(개근 거지), 휴거(휴먼시아 거지), 주거(주공아파트 거지), 전거(전세 거지), 월거(월세 거지), 빌거(빌라 거지)는 상대를 아프게 하는 말이다. 누군가 상처받을 수 있는 말을 한다면 "멈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른이 어른다울 때 아이들도 아이답게 자라지 않을까.

올바른 인성교육은 나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알기에 나의 하루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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