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에 왔다. 단 한 번도 이곳에 올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혹여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경기도까지 왔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사람들을 본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벌써 기다린 지 30분이 넘었다. 드디어 미영을 부른다. 의사는 미영을 보지 않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정신의학과 의사는 평범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최미영입니다."
"최근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의사는 어떤 말도 더 묻지 않고 미영이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집안에서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또 낯선 사람이 자꾸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아요."
의사는 컴퓨터에 '망상'이라고 적는다.
"언제부터 이런 일들이 일어났나요?"
"냄새는 조금 되었어요. 누군가 쳐다본다는 느낌도 좀 있었지만 실제로 사람을 본 것은 어제가 처음입니다."
갑자기 미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선생님, 저 미친 건가요?"
"미영님, 사람들은 아프면 어떻게 하나요?"
미영은 의사를 빤히 쳐다본다. 의사는 말을 이어간다.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고 몸을 치료합니다. 지금 미영님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 오신 겁니다. 약을 먹고 치료를 하면 됩니다. 절대 미친 게 아닙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있자,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며 미영은 정처 없이 걸었다. 문득 의사가 내 준 과제가 떠오른다. 감정일기라니. 편의점에서 공책 한 권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공책을 펼쳐본다. 첫 글자 쓰기가 어렵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쓴 단어.
최 미 영.
그 어떤 말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찾은 병원.
"미영님 감정일기는 써보셨나요?"
미영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생각보다 쉽지 않으시죠. 하지만 포기하지 마시고 꼭 써보세요. 반드시 좋아지실 겁니다. "
그렇게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다.
'이번에는 숙제를 꼭 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공책을 펼쳐보자, 최미영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내 이름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49세다. 남편과 아들, 딸이 있다. 결혼 전 강남 프라임치과 상담실장이었다.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빠르게 승진했고, 많은 돈을 벌었다. 그래서일까. 나를 시기 질투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환자분들에게 솔직한 상담을 해드렸다. 덕분에 후기도 많았다. 그렇게 나의 삶은 활기차고 즐거웠다. 출산 후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나는 연년생 아이를 케어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과 남편은 항상 바쁘다. 나도 바쁘다.
... 외롭다.
외롭다는 단어 뒤로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사가 환하게 웃는다. 미영은 어색하게 미소만 지을 뿐이다.
"미영님 감정일기는 써보셨나요?"
"네"
"어떠셨어요?"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보여준다.
"외롭다는 문장 뒤로 더 이상 적지 못하셨네요."
"일주일 동안 외롭다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어요."
"그러셨을 겁니다. 미영 님은 지금 오래된 외로움 속에서 병이 찾아왔으니깐요. 이제 두 번째 과제를 내드리겠습니다. 감정일기는 계속 쓰시면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수업을 들어보세요. 도서관, 문화센터 등에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답니다. 다음 만남은 2주 뒤에 뵙겠습니다. 중간에 저를 만나고 싶으시면 언제든 미리 병원에 오셔도 됩니다."
두 번째 과제를 받은 미영의 발걸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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