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면 가장 편안한 복장과 날것인 상태로 너를 만나러 간다. 밤새도록 나를 기다렸을 네 앞에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으며 앉았다. 커피 향이 잠을 깨운다. 하얀 화면에 아무 글이나 적어본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쓴다. 뇌의 생각과 동시에 손가락이 움직이며 타다닥 소리를 낸다. 순식간에 화면이 가득 채워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면을 보며 너와의 만남을 떠올려본다. 15년 전 부천 LG대리점에서 너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리고 왔다. 그렇게 너는 나의 행복, 기쁨, 슬픔, 분노, 화를 받아주었다. 세월의 흔적답게 무겁고, 자판은 낡아서 반질반질하지만 아직 현역이다.
너와 함께 육아일기를 쓰며 웃고 항암일기를 쓰며 울었다. 너와 함께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독서지도사 등 수많은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면 공부를 하기 위해 편입했고, 모든 과제는 너와 나의 환상의 궁합으로 완성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글을 쓰고, 강의 자료를 만들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이제는 강의안도 뚝딱 만들어내는 걸 보면 세월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너를 만나러 갈 때면 습관적으로 커피를 들고 갔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부터 너에게서 브라질, 과테말라의 향기가 난다. 너와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 어떤 말이든 적극적 경청을 하며 타다닥 소리로 맞장구를 친다. 그 소리가 좋아서 더 많이 더 자주 너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던 너와의 시간.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고민 없이 대답한다. 바로 15년째 나와 함께 하는 노프라블럼(내가 너를 부르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