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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Mar 18. 2024

20대의 어느 끝자락

무작정 떠난 여행

앨범을 펼쳤다.

잊고 있던 나의 젊은 날들이 말을 건넨다.

유독 눈길을 끄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노을을 향해 두 팔 벌리고 선 내 사진이다.


사진 출처.  정미숙


20대를 보내는 마지막 휴가였다. 집에서 쉬고 있는 친구들을 보쌈하듯이 태우고, 무작정 여행길에 올랐다. 강릉을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차를 몰고 아래쪽으로 달렸다. 삼척 장호해수욕장에 들려 잠시 바다와 술래잡기를 했다.


  조금 더 달리자 ‘경상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푯말이 보인다. 우리는 차 안에서 괴성을 지르며 흥분하여 괴성을 질렀다. 창문을 내리고 바깥 풍경을 감상하다가 마음에 드는 산책로를 발견했다. 차를 세우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갔다. 긴 의자에 한 명은 눕고 두 명은 앉았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올려다본 하늘은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도 있고, 깃털 같은 조각구름도 있었다. 하얀 구름이 우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다시 길을 가는데 울진 불영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우리는 동시에 “가자”라고 외쳤다. 불영사는 여자 비구니 스님들이 사는 곳이다. 올라가는 길은 초록옷을 입은 나무들로 가득했다. 빛이 닿아 유독 반짝거렸다. 걷다 보니 돌탑이 보였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돌을 골라 조심스레 올려놓고 소원을 빌었다. 아무도 어떤 소원인지 묻지 않았다. 혹여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절 주변을 산책한 후 초입에서 보았던 도토리묵과 감자부침을 먹으러 갔다. 전을 조금 덜어 입안에 넣자, 그 풍미와 식감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껏 먹어본 도토리묵과 감자부침 중 최고의 맛이었다. 특히 간 감자와 채를 썬 감자를 섞어 부쳐 씹는 맛과 고소함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다음 장소는 어디로 갈지 지도를 펼치고 찾아보았다. 모두의 눈에 들어온 장소는 ‘포항 호미곶 해맞이 광장’이다. 이곳에는 상생의 손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차 안에서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포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도 상생의 손이 보인다. 친구가 차에서 내리다 말고 다시 차에 탔다. 강한 바람에 놀랐다고 한다. 우리는 단단히 준비를 하고 차에서 내렸지만, 방향 없이 이리저리 부는 바람에 머리가 뒤집혔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바다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들에게 부탁해 셋이서 사진을 찍었다. 우스꽝스러운 포즈에 웃음보가 터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푸르른 20대였다.


  간 김에 졸업 여행지였던 경주에 들르기로 했다. 불국사에 도착하자마자 표를 끊으러 갔다. 매표소 앞에는 ‘오늘은 관람이 끝났습니다.’란 표지판 보였다. 우리는 무계획이 만들어내는 일에 어이없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기념으로 불국사를 배경으로 셋이서 인증사진을 남겼다.


  첨성대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되었다. 첨성대에 불이 켜지자, 낮과는 다른 모습에 한참을 서서 감상했다. 이번엔 근처 나비광장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추억 여행을 한다.


  마지막 장소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이었다. 국내 섬 중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제주도를 가느니 차라리 소매물도로 가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멋진 풍경이 일품인 곳이다. 배를 타고 도착한 소매물도는 여름의 싱그러운 초록빛과 바다의 깊은 파랑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등대섬을 산책하다가 친구가 찍어준 사진은 내 인생 최고의 사진이 되었다. 두 팔을 벌리고 노을을 내 안에 담는 모습은 한 편의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우리의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다시 강릉으로 올라가기 위해 긴 시간 운전을 해야 했지만 행복했다. 도로 위에서 해돋이를 보며 모두 가슴 벅차했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약속했다.


  “30대에는 더욱 멋진 삶이 함께하리라.”


  그때 함께 한 친구들이 유난히 보고 싶은 날이다.




메인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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