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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Mar 11. 2024

방긋방긋 엄마의 공연

복 있는 사람들의 연주

방긋방긋
입을 예쁘게 약간 벌리며 자꾸 소리 없이 가볍게 웃는 모양. - 네이버사전


드디어 내일이 공연날이다.

마을잔치, 학교 축제에 한곡을 다 함께 연주하고 내려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따로 연주한 적은 처음이라 잘하고 싶었다.


매일 2~3시간씩 연습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추었던 가야금을 다시 잡으며 처음 시작할 때처럼 물집으로 고생했던 시간들이 지나간다. 악보를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이런 나에게 70대 언니가 한마디 한다.


"미숙 씨는 시력이 좋아서 안 외워지는 거야. 우리는 안 보이니까 연주하려면 무조건 외워야 해."


70대 언니의 말에 한방 제대로 맞았다.

노화로 인한 단점이 때론 장점이 된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후 불평 대신 반드시 외울 수 있다고 주문을 걸었다.

'노력만이 살길이다.' 연습 또 연습을 했다.

이제 노래도 가야금도 모두 외웠다. 뿌듯한 마음으로 동아리 실에 들어갔다.


우리의 연주를 보시고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여러분 좋습니다. 가야금 연주도 중요하지만 가야금만 보고 연주하면 관객은 즐길 수 없습니다. 이제는 가야금 말고 관객들과 눈맞춤 해주세요! 아시죠? 방긋방긋."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며 웃는 것이 이리도 어려울지 알지 못했다.

"선생님 너무 어려워요."

나의 투정에 모두들 웃는다.


"노래하면서 웃는 것은 어렵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로 입으로 노래하고 눈이 웃는 겁니다. 노래가 끝날 때 의식적으로 객석을 보면서 웃어주는 거예요. 자 해볼까요?"


서로의 모습에 동아리실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선생님이 우리를 보며 말씀하신다.

"이제 곧 연주날입니다. 분명 무대에서 긴장해 가야금을 틀릴 수 있습니다. 이때, 멈추지 말고 넘어가세요. 그리고 무대를 즐기세요! 내가 즐거워야 관객도 즐겁습니다. 민요는 함께 즐기는 노래입니다. 자, 우리 꽃 팔러 가볼까요?"


동아리실 안에는 아리랑, 뱃노래, 밀양아리랑, 태평가, 꽃타령, 사랑가로 가득 채워졌다. 마지막 숙언니의 플루트와 국악의 콜라보네이션 연인이 울려 퍼진다. 우리는 가야금 하나로 인연을 맺고 삶을 그려가고 있다.




공연하는 엄마를 위해 겨울이가 나섰다.

"엄마, 머리는 하나로 묶는 것보다, 디스코머리로 땋으면 훨씬 나을 것 같아요?"

"그래"

머리를 다시 손질했다. 겨울에 말이 맞았다. 좀 더 어려 보이면서 한복과도 잘 어울린다.

"엄마, 뒷모습에 액세서리를 꽂으며 좋을 것 같아요."

겨울이는 7살부터 4년 동안 합창단 무대와 밸리 무대에 섰었다. 매번 엄마가 챙겨주는 모습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딸의 챙김을 받으니 느낌이 묘하다.


앞모습만큼 뒷모습도 예뻐졌다.

"겨울아, 뒷모습은 안 보일 텐데. 너무 화려하지 않을까?"

"그럼 비녀를 꽂아볼까요?"

겨울이 바쁘다. 자신의 액세서리를 가지고 오고, 비녀를 꽂아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참만에 말을 한다.

"엄마, 안 되겠어요. 우리 그냥 심플하게 가요."


딸의 조언대로 나는 심플하게 머리만 땋기로 했다. 한복에는 가장 잘 어울리는 액세서리는 진주 귀걸이와 진주반지다. 멋진 모습으로 변신하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겨울아, 오늘 고마워 조금 있다 보자."

오늘 딸아이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공연장까지 오기로 했다. 함께 가면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아이는 혼자버스 도전을 해보겠다고 한다.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두근거린다. 매일 강의를 하지만 그것과 느낌이 다르다. 4년 동안 공연을 하며 겨울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공연을 마치고 꼭 물어봐야겠다.


드디어 각 단체 소개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아리랑 막내 정미숙입니다.
저희 아리랑은 존경하는 김은수 선생님의 재능기부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복 많은 사람만이 배울 수 있는 귀한 수업입니다. 오늘 복 많은 사람들이 뭉쳤습니다. 우리 민요를 가야금이라는 악기를 통해 들려드려고 합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가야금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신나는 공연 즐겁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딸아이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다. 방긋방긋 웃으며 관객들과 눈 맞춤을 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고 드디어 우리의 악기 가야금이 연주될 시간이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 뱃노래, 태평가, 꽃타령, 아리랑, 밀양 아리랑을 병창(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 했다.


공연장은 금세 가야금과 우리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즐기고 있다.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 준비 과정 오늘 공연으 우리는 삶의 한 페이지를 채웠다. 잊지 못할 경험으로 삶이 더욱 풍성해졌다.


"딸 어땠어?"

"잘하던데요."

시크하게 대답한 후, 폰을 내민다. 딸이 찍은 영상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작은 키로 맨뒤에서 까치발을 하고 찍 영상에는 엄마인 나 보였다. 너 엄마만 보였구나. 엄마도 너만 보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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