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미숙 Mar 29. 2024

남편의 동상이 니세코빌리지에 있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남편이 사소한 일에도 자주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예민해진 남편을 보면서 조마조마해 보였다. 퇴근한 남편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oo이네 스위스로 가족스키 타러 간다네요."

  "왜 부러워요?"

  남편이 아무 말 없이 웃는다.


  "자기도 스키 타러 갔다 와요."

  "나는 쉬는 날이 없잖아."

  "만들면 되죠. 10년을 열심히 일했는데 이번 연휴 때 다녀와요?"

  갑자기 남편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후 남편은 명의 멤버를 모집했고, 숙소와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매일이 설레 보인다.



남편의 여행은
낭만과 모험이다.




  4명의 남자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홋카이도로 떠났다. 일찍 장비를 챙겨 니세코 스키장에 도착했다. 한국과 달리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곳 땡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어 보였다. 잠시 후 남편에게서 문자와 사진이 도착했다.

  "이곳에 내 동상이 있어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자를 눌렀다. 이럴 수가 정말 완벽하게 똑같다. 덕분에  아이와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이보다 반가울 수 없다



  알림 소리에 폰을 열었다. 남편이 하얀 눈 위에 누워있다. 파우더의 성지답게 넘어져도 아프지 않다며 그대로 더 누워 있고 싶어진다는 말에 웃음이 나온다. 지금 이 순간 남편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남편이 즐거울수록 사진은 더 자주 더 많이 도착했다.


  정해져 있는 슬로프가 아닌 숲길을 내려가는 기분은 어떨까. 상상할수록 흥분된다. 눈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스키가 걸리지 않고 눈을 가르며 그대로 앞으로 나아간다. 한국과는 정말 다르다.




  꽉 찬 3박 4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한동안 홋카이도 이야기를 하느라 신나 보였다.

  "니세코에는 여우주의표지판이 많아서 신선했어요. 실제로 차로 이동 중 강아지처럼 지나가는 여우들을 보며 어찌나 신기하던지. 사진을 찍었는데 어두워서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어서 아쉬워요."

  "아빠, 여우가 강아지 같이 따라와요."

  "응.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아이는 신기한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온 가족이 모여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즐겁다.


  "홋카이도는 신선한 해산물이 많았어. 카이센동이라고 우리나라 회덮밥 같은 건데 한입 먹자, 입안에서 살살 녹았어. 회가 신선해서 더 맛있더라. 휴게소에 카레와 가락국수가 보이길래 우리나라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어. 칭기즈칸 램(양고기)을 먹었는데 많은 양에 한번 놀랐고, 맛에 한번 더 놀랐지."

  "역시 우리 아빠는 먹는 거엔 진심이요."

  부녀가 웃는 모습을 보자, 행복하다.



눈은 실컷 보고 온 남편



  "아쉬웠던 건 날씨가 좋지 않아서 안개가 많이 끼여 있었어. 그래도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장비를 챙겨 나갔지. 밖으로 나가면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차가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어. 삼촌들과 매일 눈을 치우느라 진땀을 뺐."

  

  그렇게 남편의 여행은 수월하지 않았지만 니세코 스키장 4곳을 모두 갈 수 있어 뿌듯해 보였다. 남편의 예민했던 마음이 편안해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4명의 남자들은 새로운 루스츠 스키장에 갔다. 예측하지 못한 눈보라에 많은 슬로프 중 4개만 열었고, 리프트는 2개만 운행해 아쉬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그쪽으로 이동하는데  사람이 우리를 보며 오라고 손짓하길래 갔지. 근데 가까워질수록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다시 가라는 거야. 다시 돌아갈수 없어서 가까이 가서 물었지."


  알고보니 일본 데몬들이 기선전을 준비하기 위해 연습하는 곳이었다며 남편이 웃는다. 장비만 보면 선수들로 오해 할만하다. 실제 유튜브에서 보았던 쿠리야마 미쿠 데몬을 직접 보며 가슴이 허락 없이 뛰었다고 했다. 4명의 남자들은 안갯속을 헤치고 내려왔다. 아무도 없는 슬로프를 자신들만 타고 내려오니 얼마나 흥분되었을까.


  다음날 아침 맑은 날씨를 보며 다시 루스츠 스키장에 갔다. 어제 눈보라가 쳤던 곳이 맞는지 의심스러웠지만, 맑은 하늘에서 본 스키장 풍경에 반해 버렸다. 어제 내려왔던 타이거 슬로프(가장 어려운 코스)를 보며 모두 놀랐다. 실력차이가 있었기에 내려오기 힘든 이도 있었는데 안개 덕분에 두려움을 잠시 잊고 내려올 수 있었다며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한다.


  맑은 날씨 덕분에  일본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며 찍어온 영상을 보여준다. 온 세상이 하얀 옷을 입고 반짝거렸다. 그렇게 네 남자의 스키여행은 끝났다. 남편은 이야기하는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내년에는 스위스로 스키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다. 목표가 생겼으니 남편은 또 얼마나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갈까.



루스츠 스키장



바쁘게 살아가는 당신도
쉼이 필요하다.
당신이 좋아하는 곳으로
떠나라!








photo by 최가을외 3명


#니세코빌리지

#루스츠스키장

#스키여행



                    



매거진의 이전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생각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