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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May 02. 2024

아빠의 속마음

생신 선물

  아빠의 생신을 축하드리기 위해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신발을 신던 아빠가 갑자기 신발장을 열며 새 신발을 자랑하셨다. 신발을 받아 들고 엄지와 검지로 만져 본다.  적당한 쿠션감과 가벼운 무게라 지금 계절에 신기 딱이다. 아빠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빠는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으셨다.


  “아빠, 곧 어버이날인데 자식들한테 사달라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아빠의 동공이 커지며 반짝거린다. 아빠손이 바쁘게 신발장 안을 뒤지더니 낡은 축구화를 꺼내셨다.

  “그럼 아빠 축구화 사줄래?”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계시는 아빠를 보며 거절할 수 없었다.

  “당연히 사드려야죠.”

  아빠의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게다. 비싼 건 30만 원도 해.”

  “딸이 그것도 못 사드릴까요?”

  아빠는 행복한 듯 발걸음이 가볍다.


  나이키 매장에 들러 신발을 꼼꼼히 살피던 아빠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빠가 신발을 고를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렸다. 축구화를 구경하다 보니 밑창이 다르다. 하나는 고무로 돌출된 부분이 많다. 다른 하나는 딱딱하고 돌출된 부위가 12개 정도 있다.


좌)인조 잔디용/우)천연 잔디용


  “아빠, 축구화 밑창이 다르네요. 아빠가 사려는 것은 뭐예요?”

  아빠가 축구화 밑창을 보여준다. 돌출된 부위가 많다.

  “이건 일명 풋살화라고 하고, 맨땅이나 딱딱한 인조잔디에서 신기 좋은 스터드(신발 밑창에 징 모양으로 돌출된 부위)야.”

  다른 하나를 들며 추가 설명을 한다.

  “이건 천연 잔디에서 사용하고, 시합할 때 신어.”

  역시 축구를 60년 이상 하시더니 전문가다.


   나이키는 발볼이 좁다며 아디다스로 가자고 하셨다. 아디다스에도 화려한 색깔들의 축구화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빠는 그중 하나를 골라 신어보며 또 고민하신다.

  “요즘에는 발볼들이 왜 이렇게 작게 나오는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빠는 다시 나이키에 가보자고 하셨다.


  나이키에서 민트색 축구화를 고른 후, 매장 안을 걸어 다니던 아빠의 한마디.

  “막내야, 이걸로 하자.”

  아빠는 가격을 확인하고 다시 손뼉을 치며 과장된 표정을 지으셨다.

  “이런 왜 이리 저렴하노. 딸아이가 사는 건데 더 비싼 건 없어요?”

  직원이 웃는다. 우리도 따라 웃는다. 할인가로 13만 9천 원에 데려왔다.  


아빠의 새 축구화

    

  아빠 생신과 큰오빠의 생일은 하루 차이다. 항상 아빠 생일날 준비한 음식들을 다음날까지 먹게 된다. 미안함에 오빠에게 옷을 선물하기로 했다. 골프복 레노마 매장에 온 가족이 방문했다. 남편과, 아빠는 서로 마음에 드는 옷을 큰오빠에게 추천했다.


  아빠가 고른 옷은 무늬가 있는 옷이다. 직원이 아빠에게 말을 한다.

  “아버님한테도 이 옷 잘 어울리겠어요.”

  순간 나와 아빠의 눈이 마주치자 아빠가 웃는다.

  “아빠 마음에 드시면 입어보세요.”

  아빠는 괜찮다고 말하며 옷을 들고 피팅룸으로 들어가셨다.


  딸이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엄마, 아까부터 할아버지 그 옷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입고 나온 80대 아빠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빠, 뭔가 불편해 보이는데요. 멋지지 않아요.”

  옷을 고르던 딸아이가 꽃무늬가 그려진 옷을 들고 외친다.

  “엄마, 이건 어때요?”

  그라데이션 되어 있고, 하얀 꽃이 세련스럽게 그려져 있다. 소재도 얇아서 지금부터 입기 적당하다.

  “아빠, 이걸로 입어보세요.”

  아빠가 입고 나온 꽃무늬 티셔츠는 주인을 만난 듯 빛나고 있었다. 모두들 엄지 손가락을 올렸다.


  5월에 부부동반 여행이 있다고 하시며 긴 설명을 이어갔다. 곁에서 남편과 큰오빠도 하나씩 티셔츠를 들고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오늘  남자들의 크리스마스날인가. 작년에 미리 적금을 들기 잘했다며 셀프 칭찬을 해본다.    

 

  마흔이 넘어서야 아빠의 속마음이 보인다. 그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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