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회사에서 너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사내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올라온다. 깔끔한 외관에 눈이 끌려 클릭했다. 이번에 압류되어 들어온 너는 1년 동안 5000km를 다녔다. 거의 세워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직원이 한마디 했다.
“5000km 탔으면 정말 새거나 다름없습니다. 가격도 천만 원이면 정말 저렴한 거예요.”
갑자기 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퇴근 후에도 계속 녀석이 아른거렸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한 뒤 녀석을 데려왔다. 언젠가 내 차를 살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사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녀석을 데리고 온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세차였다. 나의 첫 번째 차를 직접 세차해 주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한참을 뿌리고 닦았더니 반짝반짝 빛이 났다. 집에 도착해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나와 잘 어울린다고 하셨다. 어떤 점이 어울릴까? 앙증맞은 크기가 작은 나와 닮았다는 것일까. 아무튼, 부모님을 모시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녀석에 대해 한참 자랑했다. 그렇게 녀석과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했다. 녀석을 떠나보낼 때는 많이 아쉬웠다. 넉넉한 살림이 아닌데 차를 두 대나 갖고 있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녀석은 위층 아빠 친구 딸이 데려갔다.
두 번째 흰둥이는 아이와 안전하게 탈 수 있는 녀석을 찾아보고 있었다. 우리 부부 눈에 들어온 녀석은 신형 하이브리드 K5였다. 생각보다 넓은 실내 크기와 하이브리드라 유지비도 다른 차보다 저렴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차비 50% 할인이었다. 녀석이 우리 곁으로 온 날 세련된 외모에 한번 놀라고 살짝만 밟아도 나가는 힘이 마음에 들었다. 포근히 나를 감싸주는 승차감은 또 얼마나 좋던지 바로 우리 차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를 위해 카시트를 장착했다.
그렇게 흰둥이와 함께 다양한 추억을 쌓았다. 봄, 가을에는 캠핑을 다니며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웠다. 여름이면 바다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겨울이면 전국에 있는 스키장을 다니며 우리 가족만의 추억을 쌓았다. 그렇게 10년을 함께 하던 흰둥이가 여행길에서 돌아오던 고속도로에서 브레이크 이상으로 남편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점검을 맡겼지만, 특별히 발견된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둘이서 운전하던 중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버렸다. 엑셀도, 브레이크도 듣지 않아 무서웠다. 이후 남편과 함께 흰둥이를 보내주기로 했다.
남편은 검둥이를 데리고 왔고, 나는 베둥이(베이지색 모닝)를 데리고 왔다. 근데 그 녀석은 정이 가지 않았다. 3년쯤 탔을까. 아이와 함께 안전하게 탈 수 있는 녀석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TV광고에서 녀석을 보았다. 단단한 외관과 힘이 느껴지는 모습에 반했다. 다음날 대리점에 방문해 녀석을 주문했다.
“사장님, 업비트로 부탁드릴게요.”
사장님은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안내했지만,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충분히 검색하고 티볼리 업비트로 결정했다. 한 달이 지날 때쯤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차장에는 나와 함께할 흰둥이가 환한 미소를 띠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열쇠를 받고 운전석에 앉아보았다. 포근히 나를 감싸는 익숙한 느낌은 나를 웃게 했다.
2022년 1월 흰둥이와 인연을 맺은 후 좋은 일이 갑자기 많이 일어났다. 첫 책을 출간했고, 직장에서는 의미 있는 상을 받게 되었다. 유튜브 촬영 섭외도 들어왔다. 온라인세상에 빌딩도 지으면서 많은 이들과 함께 성장하게 되었다.
나에게 흰둥이는 무엇일까? 바로 자유다. 어디든 나를 데려가 주는 녀석이다. 왜 하필 흰색을 선호했을까? 집요하게 질문하자,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그림의 시작은 백지다. 모든 글의 시작도 하얀 종이다. 하얀색에 어떤 것을 그리고 쓸지는 오직 나만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