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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센터에 간 모녀

행복 보석 9

by 정미숙

딸의 운동화를 사기 위해 주말 아침 스타필드로 향했다. 준비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 딸 덕분에 오픈런은 실패했다. 12시가 넘으면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생각에 속도를 냈다. 1시간쯤 달렸더니 스타필드 건물이 보인다. 앞, 뒤, 옆 할 것 없이 모두 쇼핑센터로 들어가는 차들 뿐이다. 주차장 모든 층에는 만차라는 표시 등이 켜져 있다. 과연 무사히 주차를 할 수 있을까.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매의 눈으로 주차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쇼핑센터 입구에 깜빡이를 켜고 있는 차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출차를 한다. '이렇게 빨리 주차를 하게 될 줄이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본격적인 쇼핑이 시작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운동화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ABC마트로 가기 위해 5층으로 이동했다. 딸은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기 위해 위, 아래, 좌우로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인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더니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발견했다. '나이키 에어 포스'. 전에 신었던 휠라 운동화는 발볼이 넓게 나와서 발이 많이 움직여 불편함을 호소했다. 반면 이번에 고른 운동화는 볼을 잡아주어 착용감이 훨씬 좋다고 했다. 딸에 말이 궁금해 신어보았다. 매번 라코스테만 신었던 나도 마음에 쏙 들었다. 딸의 빠른 결정으로 쇼핑은 금세 끝났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7층으로 이동했다. 2시가 넘었지만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잠시 멈춰 딸과 상의를 하는데 때마침 식사를 마친 커플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타이밍 뭐지?' 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 대박이다."라고 입모양으로 말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운이 좋다. 딸은 오므라이스, 나는 물막국수를 주문했다. 음식이 입안으로 들어가자 시원하고 쫄깃했다. 음식까지 완벽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딸도 입맛에 딱 맞았는지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양이 적은 아이) 오랜만에 싹싹 비운 그릇을 보니 기분이 좋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살짝 웃어본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가면 여기 있는 사람들을 또 볼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카페에는 후식을 즐기려고 하는 이들로 인해 자리가 없었다. 테이크 아웃도 35분을 기다려야 했다. 딸이 팔을 당기며 한마디 한다.


"엄마, 서점 가서 책이나 사요?"


영풍문고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코너로 향했다. 잠시 후 책을 들고 달려온다.

"엄마 조금만 늦었으면 못 살 뻔했어요. 마지막 남은 한 권을 제가 데리고 왔어요."

마음에 드는 책을 샀다는 기쁨에 이 순간 행복해 보인다. 책을 소중히 쓰다듬으며 가슴을 향해 안는다. 당장 읽고 싶어 할 것을 알기에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지만 없다. 겨우 한자리를 찾았다. 딸이 책을 읽는 동안 엄마의 쇼핑이 시작된다.


1층에는 LIST 할인 중이었다.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심플한 옷을 찾아보았다. 브라운 헤링본 재킷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살짝 걸쳐본다. 어깨도 딱 떨어지고, 소재도 부드럽다. 가장 마음에 든 이유는 가볍다. 단점은 역시 소매는 길다. 가격도 아주 착하다. 51만 원짜리가 10만 원도 안 한다. 구입하면 10년은 거뜬히 입을 수 있다. 만족스러운 쇼핑을 해 힘들었던 다리가 갑자기 가벼워졌지만, 몸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원했다.


주문을 하려고 하자, 직원이 외친다.

"지금 주문하시면 30분에서 1시간 이상 기다려셔야 합니다."

커피 한잔 마시기가 이토록 힘들다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다른 카페로 이동했다.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포기하고 딸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공차가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러본다. 빈자리가 보인다. 아무 기대 없이 자리를 확인하러 갔는데 사람도 짐도 없다. 반가움에 얼른 자리에 앉아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 자리 잡았어. 공차로 와."


자리에 앉은 사람의 편안한 미소를 장착하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자, 천국이 따로 없다. 딸은 자몽요구르트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책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잠시 감상해 본다. 가방 속에 챙겨 온 나태주 시인의 <버킷리스트>을 꺼내 페이지를 넘기다 멈춰 되새겨본다.




아직도 나는 세상에서
너보다 예쁜 꽃을
본 일이 없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 내게 왔다.
그 꽃의 이름은
겨울꽃



겨울은 딸의 애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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