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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멈췄더니 들리는 것들

by 정미숙

날씨가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더니, 결국 몸이 신호를 보냈다. 누군가 바늘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에, 참다못해 병원을 찾았다. 코와 입을 진료하던 선생님은 심한 축농증 때문이라고 하셨다. 축농증이 심하면 감기처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일정들로 인해 쉴 수 없다고 하자, 선생님은 수액을 맞고 가라고 했다. 수액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자, 스르르 잠이 들었다. 간호사의 말이 귓가에 들린다.

"환자분 수액이 모두 다 들어가셨으니 일어나셔도 됩니다."

계속 누워 있고 싶지만, 오후 일정을 위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3월부터 갑자기 생긴 오후 일정 덕분에 하루가 더욱 분주해졌다. 오전 강의만 하던 내가 오후 일정을 늘렸다. 매일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골프를 치면서 누구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도 새 학기를 적응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매일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요즘 학생들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아이는 꼭 필요할 때 말고는 찾지를 않는다. 그 덕에 시간이 많아졌고, 남편과 운동도 하고 데이트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우는 동안, 내 몸은 작은 신호들을 계속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야, 정미숙! 힘들어. 좀 쉬자고!'


속에서 내면아이가 버럭 소리를 외쳤을 때에야 비로소 멈췄다. 이미 많이 지쳐 있었던 나는 계속 누워만 있고 싶었다. 죽을 것 같은 기침을 하며 페가 쪼그라드는 듯한 느낌에 시달렸다. 그렇게 약을 먹고, 버티며, 일상을 살아냈다.


언제나처럼 맞이한 아침,

말을 하려는데 쇳소리 같은 소리만 남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목이 아파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맞추며, 손으로 반응했다. 그런데 한참을 이야기하던 아이의 화가 어느새 잦아들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진정이 된 것이다. '들어주는 것의 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사람들과 만남에서도 목상태를 먼저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모두가 이해해 주었고, 덕분에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들의 말 너머에 있는 표정, 눈빛, 손동작 그리고 자주 쓰는 말투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경청'을 제대로 배웠다. 말 뒤에 숨겨진 의도를 느끼고 말하지 않는 감정을 읽어내는 것에 푹 빠졌다.


세상에는 속상한 일도 많다. 하지만 그 일이 정말 '나쁜 일'일까?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뜻밖의 선물을 건네기도 한다.

나는 목소리를 잃고 말을 하지 못하는 대신, 사람들의 깊은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그건 단순한 '듣기'를 넘어 '소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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