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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딸의 데이트 신청

덕분에 새로운 경험

by 정미숙

"엄마, 나랑 데이트할래요?"


갑자기 딸이 데이트를 신청했다.
사춘기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 때는, 무엇보다 그 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오~ 데이트 너무 좋다! 어디로 갈까?”
“엄마, 필름 콘서트라고 알아요?”

아무 말이 없자, 아이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영화 OST를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해 주는 공연이에요. 간단히 말하면 영화를 보면서, 그 장면에 맞춰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거예요.”
“와, 너무 좋은데! 가자!”


그렇게 딸과의 데이트 일정이 잡혔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까지 교육을 마치고, 3시 <너의 이름은> 필름 콘서트를 보기 위해 한 시간 거리의 수원 경기아트센터로 달려갔다.
늦지 않게 도착해 딸을 만났다.
남편도 일정이 변경되어 함께 하게 되었다. 남편 역시 필름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현장 티켓이 가능한지 물었는데, 우리 앞줄에 딱 한 좌석이 비어 있었다.
결국 우리는 조금 떨어져 앉아 콘서트를 즐겼다.


평면적으로만 느껴졌던 영화는 오케스트라의 생생한 연주로 한층 풍성해졌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두 손이 공중에서 마주쳤다가, 살짝 당황해 다시 무릎 위로 내려왔다. 하지만 음악에 끌려 계속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때 딸이 조용히 속삭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처음 듣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대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영화에 집중했다.
중간중간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토록 밝게 웃는 아이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어릴 땐 뭐 하나 할 때마다 내게 물어보던 아이였다.

그런데 요즘은 좋아하는 음악도, 가보고 싶은 곳도, 함께 나누고 싶은 감정도 먼저 제안한다.

아이의 성장이란 건 키만 자라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는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어느덧 누구보다 좋은 친구가 된 딸.

고맙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콘서트가 끝나도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남편이 웃으며 나를 본다.

“앙코르 연주로 <Summer> 나와서 좋았죠?”
“내가 좋아하는 곡을 오케스트라로 들으니까 정말 좋았어요.”
“저는 <너의 이름은> 노래가 다 좋아서 서울이 아닌 수원 공연을 예매했어요.”
“딸 덕분에 엄마 아빠가 제대로 힐링했네.”
“다음에도 또 갈래요?”
“딸이 원하면 언제든 콜!”


이런 해맑은 아이가 정말 사춘기가 맞을까.
오늘은 유난히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래서일까, 나의 말투도 자연스레 다정해졌다.


바쁜 주말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딸의 ‘데이트 신청’ 덕분에
오랜만에 마음이 환하게 빛난 하루였다.


photo by jung.mi.sook

#사춘기도부모의사랑이필요하다

#필름콘서트 #너의이름은 #서울페스타필하모니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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