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므라이스 위 사랑이 도착했다

아이의 수줍은 고백

by 정미숙

방학때만 되면 엄마들의 단톡방은 불이 난다. 메뉴 고민은 국룰이다. "오늘 점심 뭐해 먹어요?", "오늘 저녁은 정하셨나요?" 서로의 식단을 공유하며 하루 두 끼, 혹은 세 끼의 빈칸을 간신히 채워나간다. 나라고 별다를 게 있을까. 오늘 점심 메뉴는 '오므라이스'로 낙점했다.


부지런히 채소를 씻고 다져 볶은 뒤, 꽃모양 접시에 밥을 담고 노란 달걀 이불을 정성스레 덮어주었다. 아이 앞에 오므라이스 두 접시를 놓고 어지러진 주방을 정리한 후 비로소 식탁 앞에 앉았다.


오므라이스 위에는 딸의 고백이 담겨있었다.

'사랑'

글자를 보는 순간, 세상 어떤 화려한 수식어보다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아이는 수많은 단어 중 왜 이 단어를 골랐을까. 케첩으로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엄마가 매 순간 건네는 마음이 '사랑'임을 아이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줄 알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좋으면 좋다고, 때로는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주었다.


내일도 메뉴 정하기는 고된 숙제겠지만, 아이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다시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내일은 또 어떤 요리를 해줄까', '아이가 가장 행복해할 맛은 무엇일까'. 정성껏 고른 메뉴가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겠지만 상관없다. 실패한 날에는 다시 그 마음을 다독여 적어 내려가면 그뿐이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행동의 최종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삼시세끼를 고민하며 보낸 시간도 결국 아이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음을, 그리고 그 행복은 다시 내게로 돌아와 '사랑'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아이의 고백 하나로 힘들었던 오늘의 노동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행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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