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이 넉넉지 않았던 시절,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다. 언니 오빠들이 올 때까지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어느 날 누군가 똑똑 대문을 두드렸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 문 가까이 다가갔다. 조심스레 묻는다.
“누구세요?”
“네가 봄이구나. 난 돼지 삼촌이야.”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돼지 삼촌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삼촌은 혁이 삼촌밖에 없는데요. 누구세요?”
“네가 기억을 못 하는구나. 너 어릴 적에 다쳐서 엉덩이에 상처가 있지?”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거봐. 삼촌 맞다니깐. 문 좀 열어줄래?”
“안 돼요. 엄마가 낯선 사람에게 절대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어요.”
돼지 삼촌은 어쩔 줄 몰라하며 대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가와 다시 말을 건넨다.
“봐봐, 모르는 사람이 수박을 사 오지는 않아.”
문틈 사이로 보니 정말 수박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맞는 말이지만 엄마 말을 어길 수는 없다.
“안 돼요.”
돼지 삼촌은 간절한 목소리로 나를 다시 불렀다.
“봄아. 삼촌이 군대에 있을 때 네가 태어나서 모를 수 있어.”
“그래도 안 돼요.”
남과 북이 협상을 하듯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한참 옥신각신하던 우리는 더 이상 말할 기운이 없는지 조용하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귀를 문 가까이 대본다.
“어머, 도련님”
엄마다. 엄마가 이 시간에 왜 왔을까. 문틈을 통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들어가시지 않고 왜 문 앞에 서 계세요?”
돼지 삼촌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이고 얼마나 답답하고 난처하셨을까요. 봄아”
엄마가 부른다. 가고 싶지 않지만 계속 버틸 수만은 없다. 엄마 곁에 가 앉았다. 엄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돼지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몇 살 때 일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일 거다. 아이는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를 좋아한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 돼지삼촌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 엄마의 1인 3역의 연기가 마음에 들어서일까. 아님 모든 대사를 기억해 자신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서 일까. 그렇게 아이는 밤에 무서움을 이야기로 이겨냈다.
돼지 삼촌은 곧 환갑이 된다. 돼지삼촌은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