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반찬을 할거면 많이 해와야지 겨우 이만큼 가지고 왔냐는 거야? 나도 애들 챙기느라 바쁜데 말이야. 정말 이기적이야. 어쩜 사람들이 이래. 거기까지 좋다고 쳐. 다음이 더 문제야."
무슨 말을 했을까.
"온 김에 냉장고 청소 좀 하고 가래. 음식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식모야. 짜증나. 근데 더 짜증나는 건 내가 하고 왔다는 거야."
"미영아, 결국 너에게 화가 났구나. 얼마나 속상했으면 달려왔을까. 괜찮아. 네가 사람이 너무 좋아서 그래."
미영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녀는 '괜찮아' 이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거다. 한참을 울고 난 미영은 특유에 미소를 보였다.
"미영아, 우리 조금 연습해 볼까. 거절할 용기도 필요해. 만약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지금은 조금 어려워요 어머님. 대신 애기 아빠와 상의하고 날 잡아서 올게요. 그래도 괜찮죠? 이렇게 말하는 거야. 지금 당장하고 가라 하진 않을 거야. 우리 조금 더 현명해 지자. 지혜로운 사람은 같은 말도 다르게 하거든."
미영이 웃는다.
"어머님이 애미야, 청소 좀 하고 가렴하고 말하면?"
"어머니 지금은 시간이 안될 것 같아요. 대신 애기 아빠랑 주말에 들를게요."
물개 박수를 치며 잘했다고 응원하자, 미영이 쑥스러운 미소를 띤다.
"자 이번에 어머님이 계속 지금하고 가라고 하는 상황으로 해보자. 애미야, 지금 하고 가라."
"어머니 지금은 남편이 부탁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
"잘했어. 잘했다. 남편이 부탁한 일이니 빨리 가야지."
어른도 아이도 연습이 필요하다. 어른이 부탁하면 무조건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처 나를 지키지 못한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거절할 용기다.
자신을 지키지 못한 마음에 미영은 가슴이 메어지도록 서럽게 울었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어떤 말을 전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 이 점이 무너질 때 자신을 공격한다. 나를 위로하고 감싸줘야 하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답답하고 속상할 뿐이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나를 지켜 나가는 미영을 보며 진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