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상황을 떠올려 본다. 차를 주차하고 집에 왔다. 겉옷을 벗고, 물을 마신 후 차 키를 보관함에 넣었다. 근데 왜 없을까. 다시 한번 기억을 되돌리기 한다. 눈을 감고 현관에서 들어오는 것부터 하나씩 떠올려 본다. 집에 들어온다. 물을 마시고, 책을 읽었다. 차키는 보이지 않는다. 생각이 같은 곳에서 멈춘다. 얼마나 떠올렸을까. 생각이 나지 않자 두통이 온다. 머리를 감싸며 답답해하는 순간, 차 키를 재킷 주머니에 넣는 장면이 떠오른다. 얼른 드레스룸으로 달려갔다. 재킷 주머니를 뒤지자, 차 키가 잡힌다.
2년 전부터 건망증이 눈에 띄게 보였다. 올해는 유독 빈도수가 늘었다. 건망증이면 괜찮지만 혹여 치매가 올까 봐 두렵다. 외출을 하기 위해 나가려고 하는데 이번엔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요청했다. 하필 배터리가 방전되었는지 휴대폰이 꺼져 있다는 메시지만 들린다. 아이와 함께 휴대폰 찾기에 들어갔다.
안방부터 작은방, 거실, 부엌까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분명 집안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어디로 꼭꼭 숨어버린 걸까. 눈을 감고 소파에 앉아서 나의 동선을 떠올려 본다. 친구와 통화를 하고 책상에 올려 두었다. 청소를 하면서 음악을 듣기 위해 폰을 만졌다. 청소가 끝난 후 다시 폰으로 인스타, 블로그를 검색했다. 그리곤 끊겼다.
아이가 환한 표정으로 달려온다.
“엄마 폰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요.”
“어디?”
“엄마 지난번에도 휴대폰 잃어버렸다면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죠.”
맞다. 그때도 휴대폰이 없어져 한참을 찾다가 다 포기하고 소파에 앉았는데 주머니에 뭔가가 잡혔다. 휴대폰이었다. 얼마나 허무하고 황당했는지 모른다. 지금껏 뭐 했나 싶었다. 아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깜빡하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것뿐일까. 안경을 쓰고서 안경을 못 찾겠다고 하자, 남편과 아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안경 쓰고 있잖아 했던 적도 있다. 아직 40대인데 혹여 치매라도 올까 싶어 걱정이다. 정신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매일 글을 쓰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거다.
아이가 냉장고 문을 연다. 설마 아니겠지. 아이가 웃으면서 무언가를 꺼낸다.
“엄마 지금 표정 장난 아니에요. 비타 500 드시고 천천히 생각해 봐요.”
조그맣던 녀석이 이제는 엄마를 달래기도 한다. 비타 500을 마시며 또 생각을 정리해 본다. 문득 떠오른 기억. 맞다. 밀리의 서재를 들으며 설거지하기 위해 폰을 컵 선반대에 올려놓은 거다. 달려가 보니 컵들 사이에 떡하니 폰이 있다. 왜 모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치매 영화 중에서 <스틸 앨리스>가 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사랑스러운 아내, 존경받는 교수였던 앨리스는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된다. 행복했던 모든 기억들이 잊혀 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순간을 살아낸다. 아직 기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내 삶이 반짝반짝 빛나도록.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순간을 사는 것과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 나를 살라고. 상실의 기술을 배우라고. ···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제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