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탔다. 바닥과 주변에 물이 흥건하다. 누군가 물싸움을 한듯한 모습이다. 오늘 청소아주머니가 쉬는 날이신가 생각하며 B1층 버튼을 눌렀다. 1층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내리셨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안내방송이 나온다.
화재발생 화재발생 화재발생
당황한 나는 비상등을 눌러보았다. 아무것도 눌러지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관리실 번호를 찾았다.
“여보세요. 관리실이죠? 여기 12동 3,4라인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갇혔어요.”
“엘리베이터가 안된다고요?”
“아니요.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갇혔어요.”
"사람이 갇혔다고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 열림 버튼을 길게 꾹 눌러주세요. 그럼 열릴 겁니다.”
직원이 설명하는 대로 눌러보았다. 아무리 눌러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럼 비상벨을 눌러보시겠어요?”
“비상벨뿐만 아니라 모든 버튼이 눌러지지 않아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업체에 연락 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살면서 처음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다.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와 사진을 남겼다.
바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된 거야?”
“겨울이 수영 수업 갔는데 수건을 안 가져갔다고 해서 챙겨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1층에서 갑자기 멈췄어. 비상벨도 안 눌러져서 우선 관리실에 연락했어. 금방 열리겠지.”
“그래.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보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업체와 통화를 했습니다.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저희가 강제로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평소에 20분은 길지 않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자, 갑자기 두통이 느껴진다. 비릿한 냄새 때문에 속도 매스껍다.
전화벨이 울린다. 오빠다.
“괜찮아?”
오빠의 이 말이 참 따뜻하다.
“안 괜찮아 오빠. 머리도 아프고 어지러워. 토할 것도 같고, 엘리베이터 안이 너무 더워.”
“내 동생 멘털 잡자.”
그렇게 오빠와 20분 내내 통화를 했다. 처음엔 금방 열리겠지 했던 생각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힘듦을 느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진짜였다니. 정상적인 사람도 잠깐 갇혀있자, 멘털이 무너지는데 혹여 아픈 사람이 갇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빠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열림버튼을 길게 눌러보았다.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20분이 지나자 문이 열렸다. 탈출의 기쁨이 이런 것일까. 내 생전 이렇게 빠르게 몸을 움직였던 적이 있을까 싶다. 수건도 없이 어떻게 씻고 나왔을지 걱정이 되어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 엄마 탈출 성공했어. 금방 갈게.”
센터 도착.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고 계속 통화 중이었다. 아이를 찾기 위해 센터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현수막 뒤에 아이를 발견했다.
“겨울아”
감격적이 모녀 상봉이다. 아이가 환하게 웃으면 달려온다.
“모녀 탈출 성공!”
“모녀 탈출 성공?”
“엄마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센터에서 탈출했잖아요.”
"맞네 맞다. 수건도 없어 당황했을 텐데 어떻게 나온 거야?"
"옷을 한벌 더 가져갔길래 그걸로 닦고 나왔어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황해하지 않고 해결해 낸 아이.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우리는 오늘의 사건을 통해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 갇혔을 때 행동요령
1. 절대로 도어를 억지로 열거나 충격을 가하지 않는다.
(승강기 밑으로 추락 위험 & 도어 일그러짐으로 인해 도어 개방 어려움)
2. 최신 승강기의 경우 비상시 열림 버튼을 5~10초 이상 길게 누르면 도어 열림 기능이 있다.
3. 인터폰도 안 터지고, 핸드폰도 없다면 외부에 들릴 수 있도록 소리 질러 도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