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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Apr 27. 2023

해병의 말

아직 늦지 않았어

 남편과 오랜만에 둘이서 데이트를 했다. 세 번의 여름을 보내고 결혼한 우리는 결혼 13년 차다.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이 흘렀다. 철없던 우리는 이제 어른의 모습을 띠고 있다. 남편이 조용히 말을 건넨다.

“자기야, 그때 생각나?”

“언제?”

“내가 결혼 허락 받으러 갔을 때 말이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했던 것 같은데 남편은 아니었다는 듯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2009년 봄, 가을과 결혼을 결심했다. 가을이 처음 부모님께 인사하러 오던 날이다. 가을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식은땀을 흘렸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을의 동공은 갈 곳을 잃었다.

“어서 오게. 최가을 군.”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봄이 언니예요.”

“반갑다, 가을아.”

4남매의 막내가 신랑감을 데리고 온다는 말에 온 가족이 출동했다. 가을은 당황스러웠지만 아닌 척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아빠가 말을 꺼냈다.

“자네 군대는 어디 나왔는가?”

“육군입니다.”

“나는 해병대야.”

가을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옆에 있던 형부가 말을 이었다.

"나도 해병대."

가을이 고개를 끄덕이자. 형부 옆에 있던 작은 오빠가 웃으며 말을 한다.

"당연히 나도 해병대."

해병대 소리가 나올 대마다 가을의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틈을 타고 마지막으로 들리는 큰 오빠의 한마디.

“겁먹지 마. 나는 육군이야.”

큰오빠의 말에 가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을의 당황한 모습이 재미있어 다시 질문을 던지려는데 언니가 먼저 선수를 쳤다.

“우리 봄이 대한 사랑 변하지 않을 자신 있나요?”

언니의 눈빛을 보자, 잘못 대답했다가는 바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 같았다.

“네. 자신 있습니다.”

긴장한 탓에 군대 버전의 우렁찬 말투가 나와 버렸다. 가족들은 가을의 말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빠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가을에게 말을 건넨다.

“자네, 아직 늦지 않았어.”

가을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눈만 깜빡이자.

“우리 봄이 쉬운 아이가 아니야. 괜찮겠어?”

가족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일제히 가을을 쳐다보았다.

가을의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아빠, 그만 좀 하세요. 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세요. 짓궂으셔.”

“왜 네가 쉽지 않은 건 우리 식구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가을 군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이건 뭐 딸의 결혼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 아닌 방해를 제대로 하고 계신 아빠.

가을이 눈을 반짝이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한다.

“아버님, 저는 봄이 씨를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결혼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당황스럽다고 이야기하는 남편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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