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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인정될 수 없다

by 정미숙


특별한 날 아침이다. 겨울이네 학교에서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수업을 위해 강사로 변신한다. 세미 정장에 명찰을 목에 걸고 학교에 간다. 학교는 1교시 수업 중이라 조용했다. 잠시 교정을 둘러본다. 처음 겨울이를 보낼 때 운동장이 참 컸던 것 같은데 오늘은 유난히 운동장이 작아 보인다.


2교시부터 4교시까지 두 명의 강사가 배정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6학년 아이들의 모습은 어떨까. 의젓하게 책상에 앉아서 수업 준비를 말끔히 하고 있을까. 반대다. 책상 정리도 엉망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종이 친 것도 모를 정도로 시끌벅적하다. 3년 전만 해도 6학년 아이들은 의젓했다. 곧 중학생이 되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은 단체생활보다는 개인생활을 하다 보니 천진난만하다.


지금부터는 활동 시간이다.

"행복한 반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5분 동안 생각해 보고 나눠 준 스티커에 작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 적은 친구들은 앞에 나와서 활동판에 붙여보도록 하겠습니다."

빠르게 적는 아이, 적지 못하고 고민하는 아이, 친구 의견을 훔쳐보는 아이 등 다양한 아이들이 보인다. 모든 아이들이 의견을 작성하고 활동판에 붙였다. 한 아이의 의견에 시선이 멈췄다.


죽지 않을 만큼 때려준다.


이 글을 작성한 아이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작성했을까. 장난스럽게 적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야 할까. 아님 이 이야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다른 아이들의 의견을 보다 같은 내용을 적은 아이들이 2명이 더 있었다. B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물어본다.

"이렇게 작성한 이유를 말해줄 수 있을까요?"

"A라는 친구 것을 보고 작성했습니다."

"C라는 친구도 같은 의견을 적었는데 이유를 말해 줄 수 있을까요?"

"B라는 친구의 것을 보고 작성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본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나의 장난이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어 삶을 끝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수도 있답니다. 어제 경북에서도 한 학생이 자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이들이 조용하다. 아이들에게 포스트잇을 나눠준다.

“나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부모님께 말씀드리겠다는 친구는 ○, 말씀드리지 않겠다는 친구는 ×를 표시해 주세요.”

결과를 보고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말씀드리지 않겠다는 아이들이 50%가 된다. 아이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할까. 혼자 끙끙 앓다가 혼자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권리가 있습니다.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정해 놓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소중한 사람으로서 나와 너를 소중하게 대할 때 모두 행복할 수 있음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매년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하고 있지만 줄어들지 않을까. 왜 피해자는 마지막에 삶을 끝낼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일까. 지난달 25일에도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학생 수첩에 쓰여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학교폭력을 당해 보니 왜 아무한테도 얘기할 수 없는지 알 것 같다. 내 꿈, 내가 하는 행동 등 모든 걸 부정당하니 온 세상이 나보고 죽으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너희들 소원대로 죽어줄게.'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왜 어른들은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빛을 잃어가는 것을 부모도 교사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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