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말이 있을까. 있다. 임신입니다 5글자는 여자에서 엄마로 새로 태어나게 했다.
결혼을 하고 간절히 원하던 아이. 하지만 신은 나에게 아이를 보내주지 않고 건강을 더 돌보라고 하셨다. 갑상선 약을 잊지 않고 챙겨 먹으며 정상 수치를 만들어 가던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임신입니다.”
그 말은 나의 모든 것을 바뀌어 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사춘기가 살짝 시작되어 때로는 대답을 안 하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있고 싶어 하기도 한다. 딸은 같은 성이라서 일까. 엄마와 통화는 것이 의외로 많다. 문구, 책, 전시회, 카페, 박물관,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어느 날 하교한 아이가 묻는다.
“엄마 난 버스랑 지하철을 안 타봤어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릴 적 발레를 배우러 가기 위해 매주 버스를 타고 영종도에서 송도를 왔다 갔다 했다. 아이는 어릴 적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가 보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맞다.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를 온 후, 차가 필수가 되었다. 서울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으니 시간 맞추기도 어렵다는 핑계로 항상 자차를 이용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게 된 지 꽤 여러 해가 되었지만 잊고 있었다.
아이에게 제안을 해본다.
“겨울아, 주말에 우리 미술관 갈까?”
“미술관 좋죠.”
“이번엔 색다르게 가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는 거야? 어때?”
“엄마 재미있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힘들 수 있어. 많이 걸어야 하고 기다려야 해. 그래도 괜찮아?”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보게 될 전시회는 <2022년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다. 한가람 미술관을 가기 위해서는 사당역까지 가서 2호선 전철을 타고 3호선으로 갈아탄 후, 남부터미널 역에서 하차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버스 노선도 찾아보고, 전철 보는 법도 알려 주었다.
전시회 가는 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탔다. 아니 이럴 수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을까. 버스 안에서 충전이 가능하다. 무료 와이파이가 된다. 자차로 다니다 보니 세상이 이렇게 바뀐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이보다 내가 더 신기해서 버스 이곳저곳을 관찰했다. 자리마다 충전기가 있다 보니 자기 자기에서 벨을 누룰 수 있다. 같이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다른 세계에서 온 줄 알 거다.
버스 안에서 충전 가능, 무료 와이파이
버스에서 하차 후 전철로 환승했다. 아이와 함께 지금 위치를 확인하고 내리는 곳을 확인한 후 전철 안을 관찰했다. 전철에 움직임 대로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가 서로의 어깨를 부딪혔다. 모녀는 얼굴을 마주하며 미소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손잡이에 위치가 다른 것도 신기해했다. 아이가 전철 밖으로 나오며 혼자 소리 내 웃는다.
“겨울아, 왜?”
“엄마, 나오는데 카드를 찍었는데 안 열리는 거예요. 가만히 보니 반대편을 찍은 거 있죠. 민망해하며 얼른 돌아서 나왔어요.”
“정말? 실은 엄마도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전철 탔을 때 그랬던 기억이 난다.”
“나 완전 엄마 닮았다.”
어설픈 것도 닮은 모녀라서 좋은지 연신 웃고 또 웃는다.
1시 반쯤 미술관에 도착했다. 전시회 입구에서 티켓을 받고 도슨트를 확인했다. 2시에 있다. 겨울이와 함께 위치를 확인했다. 자유롭게 자신이 보고 싶은 곳을 마음껏 관람한 후 2시에 만나기로 했다. 56회를 맞이하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열리다 보니 많은 관람객들로 복잡했다. 78 작품 중 10 작품이 한국 작품이다.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뿌듯했다. 겨울이도 뿌듯한지 연신 사진을 찍고 읽고, 관찰한다. 그렇게 우리는 3시간을 관람했다.
아이가 커갈수록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사고력도 향상되다 보니 이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다. 엄마 되길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