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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Sep 25. 2023

선생님, 선 넘으셨어요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나는 9년 차 강사다. 4교시 수업진행을 위해 교실 문을 열고 선생님께 인사를 한 후,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며 소통을 했다. 계속 한정된 아이들만 발표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이야기한다.

“우리 앞에 계신 선생님이 질문한 것을 옆에 친구와 같이 이야기 나눠볼까?”

이후 선생님은 내가 준비한 수업을 자신이 준비한 수업이듯 진행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난 친구들은 머리에 손을 올려보자.”

갑자기 교실에서 나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선생님께 말을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영상 시청 후 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묻자,

다시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

“토론했으니까 모두 손들어야지.”

'선생님 정말 왜 이러세요. 이건 아니죠. 선 넘으셨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바보같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선생님이 말 한대로 다양한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의 장점을 찾아내는 활동시간이다. 아이들은 열심히 친구들을 관찰하고 찾아보며 활동지에 작성하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작성을 완료한 것을 확인한 후

“발표하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주세요.”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첫 번째 아이가 발표를 한다.

“태권도를 잘합니다.”

어디선가 또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

“제 친구는 태권도를 잘합니다라고 말해야지.”

아이는 선생님의 말대로 수정 후 다시 말을 한다.

“제 친구는 태권도를 잘합니다.”

“제 친구는 배려를 잘합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정답을 외친다.

“정답은 김가나입니다.”


“이번에는 김가나가 일어나서 나를 적어줘서 고마워라고 이야기해 보자.”

“나를 적어줘서 고마워.”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말씀하시는지는 안다. 다만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인 참여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무가 아닌 숲을 보시면 좋으실텐데 굳이 외부강사 수업에서 수정하실 필요가 있으실까.


교실에서 나는 사라졌다. 수업을 도난당하고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즐겁다. 오직 나만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40분의 수업이 끝났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선생님은 외부강사를 뭐라고 생각한 것일까. 9년 동안 수업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많이 당황스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동료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들은 모두 일시정지가 되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화를 내셨다.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내가 너무 바보스럽다는 말에 선생님들도 말하지 못했을 거라며 위로해 주셨다.


어른답지 못한 선생님의 행동과 나의 바보스런 대처에 하루 종일 멍하다.


선생님들께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외부강사 수업에 예의를 지켜주세요.
서로의 수업방식을 존중해 주세요.
모든 아이들이 발표하면 좋겠지만 자유를 주고 싶습니다. 발표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생각하고 있답니다. 모두 똑같은 학습을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수업을 나갈 때마다 좋은 선생님들 덕분에 편히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되길 바란다.

다른 것이 아닌 수업을 침해하는 행동은 외부 강사들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할 눈이 필요하다.


소중히 준비한 수업을 10분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마음 때문에 많이 힘든 하루였다. 만약 다음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당당히 말할 거다.

"선생님 저에게 주어진 수업이니 제가 진행해도 될까요?"




※위 글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불편한 내용이 있으시면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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