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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Jun 08. 2017

퇴사후 #7 비교의 삶

쓸데 없는 에너지 낭비 말고 인정

회사를 관둔 지 언 2년. 두달 후면 만 2년이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테두리. 테두리 밖은 자유롭고 또 자유로웠다. 무한 자유를 만끽했다. 8개월 동안 해외여행만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걸.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심플하게 올어바웃 머니(All aobut money)를 깨달았다.  미래에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지갑 얇아진 것 빼곤 모든 게 낫다. 물론 지갑 얇아지는 스트레스가 제일 큰 건 반전이지만. 그럼에도 2년 전으로 돌아가라면 곧 죽어도 그럴 생각 없다.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소자본으로 몇가지 일을 벌였다. 하나는 망한 거 같고(그래서 한동안 우울하고 슬펐다.) 나머지 하나로 용돈벌이 하며 살고 있다. 용돈벌이로는 먹고 살 수 없으니 또 다른 길을 척하기 위해 공부 중이다. 자유의 몸은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남편도 직장도 없는 30대 중반 여성에게 테두리 밖은 더더욱 냉혹하다. 그럼에도 영화도 보고 근교로 여행도 간다. 커피숍 탐험도 하며 나름 즐기며 산다. 그러므로 난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사실이 그렇다. 돈이 부족해도 원하는 대로 살자고 머리 빡세게 굴리면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다.  물론 눈높이를 낮췄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만족은 스스로에게 달렸다.


요즘 친구들을 종종 만난다. 그 중에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맘 친구들이 몇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가끔 답답하단 생각이 든다. 친구가 답답하다는 게 아니라 이들의 삶이 갑갑하다. 쾌적한 환경에 넓은 아파트에 사는 A양. 항상 쪼들리듯 사는 분위기다. 남편의 월급은 500만원 정다. 그럼에도 매일 같이 허덕이는 분위기가 있다. 빚을 내 아파트를 분양 받은 게 가장 큰 이유일 거다. 무엇보다 비교의 삶에 노출된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한번은 아이 친구 집에 초대 받고 씁쓸해 했다. 그 집 엄마 남편은 경찰이고 집은 단독주택으로 넓고 쾌적하다고 했다. 자신의 여유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친구 엄마. 친구는 그녀를 피하는 방법을 골몰하느라 스트레스 받아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둔 B양. 본인이 사는 아파트 단지 이야기를 해주는데 들어보면 점입가경이다. 어린이집 아이들끼리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몇평’에 사는 지 구분해 ‘왕따’를 시킨단다. LH가 들어간 아파트는 100% 왕따란다. 빨리 큰 평수로 옮겨야겠다고 다짐하는 그녀.


애도 없고 남편도 없는 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갈일도 없고 아파트 커뮤니티에 소속될 일도 없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비교하거나 비교당하는 삶을 살 필요가 없다. 물론 같은 선상에서 출발해 더 나은 삶을 사는 지인들과의 비교에서 100% 벗어날 순 없다. 이들과 연락을 아예 끊어버리면 100% 가능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30대 중반에 자유를 찾으러 떠났다가 삐걱거리는 상황에 처해 있으니 비교를 시작하면 끝도 없다.   특히 부모님과 대화할 땐 더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비교’에 쓰는 에너지가 아쉽다. 그리고 나는 ‘비교’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누군가를 비교하고 스스로 주눅당할 수 있는 처지에 자주 놓인다. 나이가 들어가니 그 정도가 더하다. 좌절에 빠질 때가 분명 있다. 이럴 때면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운다. ‘내 삶은 내 삶이고 너의 삶은 너의 삶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의 격차는 커진다. ‘내가 분명 저 아이보다 앞서 있었는데 지금은 왜 이러지라고 후회’도 했다. 그러나 후회해봤자다. 남는 건 부정적 감정뿐다. 나는 최근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바보 같은 선택을 했고 실패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인정을 하고 나니 자유로워졌다. 비교를 하자면 끝도 없고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우울해질 뿐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된다. 내가 가는 길에서 매 순간 베스트로 임하는 방법밖엔 없다. 그 누군가가 내 삶을 ‘실패’라고 정의 내린다 하더라도 스스로 실패했었다고 인정했더라도 앞으로의 내 삶은 ‘베스트’여야만 한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베스트. 요즘 항상 하는 생각이다. 나도 내 글 읽는 사람들도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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