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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Jul 05. 2017

퇴사후 #14 이렇게 찌질해봤어? 아니면 말을 마

타인의 찌질함은  ‘힐링’을 준다

며칠 전 쓴 엄마 관련 글 조회수가 20만건이 넘었다. 2만도 아니고 20만이라니 새삼 브런치가 얼마나 강력한 플랫폼인 지 깨닫고 있다. 예전에 샀다가 팔아버린 다음카카오의 주식이 아른거린다. 브런치 같은 플랫폼이 있는 한 다음카카오의 미래는 나쁘지 않다.


내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다. 물론 몇몇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실제 ‘남자복, 직장복이 없어? 나는 글쓴이 같은 부인을 두지 않겠다.’ ‘모실 부모는 구분해야 한다. 엄마가 그래도 저 남자와 살겠다면 또 모르겠지만.’이라고 댓글을 단 사람도 있었다. 어쩌다 우리 아빠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저 남자’라는 소리를 듣게 된 건  지 모르겠다.  어차피 모든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그래도 내 브런치이니 마음에 안 드는 댓글 2개는 가차 없이 삭제했다.  



왜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은 걸까. ‘제목’의 힘이 컸던 거 같다. ‘먹을 게 지천인 세상에서 ‘피자’ 하나 사먹지 못하는 엄마는 도대체 어떤 엄마야.’ 그런데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 다. ‘작가가 좀 찌질하네. 근데 남 얘기 같지 않아.’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누군가와 얼굴 마주보고 얘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말하기 힘든 워딩도 많다. 그래서 브런치의 글을 굳이 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초반에 두어명에게 알려준 걸 가끔 후회하긴 한다. 1mm의 솔직함이 결여된 적 있다면 지인을 의식했을 수 있다.) 처음 브런치를 접했을 때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컨셉이 있었다. 브런치는 막연하게 솔직한 이야기, 에세이 같은 글을 쓰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브런치에 글을 쓸 때면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해졌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시기도 특별했다. 사회라는 커다란 방망이에 힘껏 두들겨 맞은 직후였다. 나를 찾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일생 일대 ‘자아’와 가까워지기 시작하던 찰나쯤이었다.


한동안은 브런치를 외면했다. 글을 쓴다고 해소되지 않을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기록으로 남기면 기분이 더 최악이 될 것 같은 순간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생각의 방향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인생은 불안함의 연속이라고 굳게 믿게 된 게 그렇다. 오늘이 최악 같지만 내일이 더 최악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힘든 오늘이 지나면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접게 됐다. 그런 헛된 희망들로 지금까지 내 스스로를 고문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과거의 시간들이 애잔했다. 무엇보다 내일이 최악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은게 있다.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은 내일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유는 또 있다. 지금에 충실하자고 생각하니 이런 글 쓰는 것도 기록이고 내게는 유산이 된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좋은쪽으로의 방향 설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단 생각도 했다.





보통 SNS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나마 브런치에는 다른 플랫폼과 비교해 솔직한 글이 많다. 요즘에는 여행기가 많은데 그만큼 수요가 많아서일 거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고통 받는다. 회사를 다니든 그렇지 않든 그렇다. 품 안에는 언제나 사표를 품고 사는 게 회사원이다. 회사를 관두면 불안감은 폭발 수준으로 증가한다. 나는 이를 겪어봤고 지금도 겪고있다. 빨간머리 앤은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정말 멋지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퇴사 전까진 앤의 생각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우울할 때가 많다. 물론 여전히 아름답다고 여기고 싶고 그러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마약 같이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불안감을 잠시라도 잊기위해  여행을 통해 탈출을 꾀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대리만족을 시도한다. 여행기를 통해 가능하다.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작가의 글도 ‘힐링’이 된다. ‘괜찮아. 너는 잘될거야’ 식의 위로도 있지만 나처럼 ‘너 이렇게까지 찌질해 봤어? 아니면 말도 마.’ 식도 있다. 나만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 힘든 순간이 더 힘들어진다. 남들도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면 괜스레 위안을 받는다. 나보다 훨씬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은 이유가 이와 완전히 무관치는 않을 거다.  난 앞으로도 한동안 찌질할 나를 기록할 거다.  더 찌질해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왜 찌질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러하다. 나는 삼십대 중반에 결혼도 안하고(못했다고 하기엔 진심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결혼은 소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집에 산다. 그렇다고 용돈을 드리는 것도 아니고 제 2의 인생을 꾸려보겠다고 공부 중인데 이마저도 먼가 불투명하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찌질하다 정의내렸다. 더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와 사실이지만 스스로의 희화화를 통해 내글을 읽는 이들과 조금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담긴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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