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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Jan 01. 2016

퇴사후  #3 길을 잃다 I am lost

잠시 길을 잃었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언제나 인생은 그렇다. 정답은 없다.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래야 하는 틀은 있다. 20대가 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고, 30대가 되면 괜찮은 신붓감, 신랑감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 그런 틀 말이다. 여기는 호주. 여기엔 틀따윈 없는 거 같다. 호주는 땅덩어리가 넓다. 그래서 하나로만 정의하긴 어렵다. 하지만 내가 있는 호주 시드니, 그것도 시티 내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이민자가 산다. [시드니에서 시티는 보통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써큐러키(오페라하우스), 타운홀 등의 중심지를 말한다.]



그래서 생긴 것도 다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 다르다. 같은 시드니지만 역마다 다른 나라인 거 같을 때도 있다. 지하철 역마다 각각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사는 일종의 Town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마다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 이렇듯 이 나라엔 정해진 틀이라는 거, 우리가 흔히 떠올릴 만한 형태라는 게 없다. 이곳 호주에는 유명한 음식 따위도 없다. 하루는 시드니 한 옷가게 직원에게 물었다. 보통 호주에선 크리스마스에는 보통 어떤 음식  먹어? 칠면조?


"칠면조... 그건 미국 아닌가. 딱히 정해진 건 없어. 각각 다른 음식을 즐기지. 우리는 그냥 우리가 먹던 거."


어떤 사람은 이런 말도 했다. "제가 호주 사람한테 여기서 유명한 음식이 뭐냐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태국 음식을 추천하더라고요." 여기서 고작 유명한 거라고 해봤자 피쉬앤칩스 뿐이다. 그러니까 생선 튀긴 거랑 감자튀김. 그리고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니 다양한 나라에서 건너온 음식들로 가득하다. 정말 이곳에는 '이래야 하는 게' 없다.  하물며 음식도 그러니까.


시드니 시티에서 가장 유명한 말레이시안 음식점. 마막. 한국 관광객들도 줄 서기에 여념 없다.



그래서 내 나이도 잊을 수 있다. 내 나이는 이곳에서 나를 결정하는 어떤 단서가 되지도 않는다.  이 나이에는 저래야 하고 이래야 하는 틀도 없어서다.


그래서 여기서 처음 왔을 때 이곳에서 제 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이곳에서 최근  만난 한국인 여성분이 말했다. "여기서 중국계  이민자와 결혼했는데 딱히 아이는 없어요. 제 나이는 32살, 그런데 한국에만 가면 내가 늦은 거 같아요. 친구들 보면 애가 둘이나 있고... 그래도 호주에선 나이가 전혀 문제 되지 않으니까. 일단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는 게 목표에요."


이 방식이라는 거 형태라는 걸 다시 이야기해볼까. 이곳에 오래 거주했던 한국인들이 한국에만 가면 느끼는 게 있다. "여기에서는 서로를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에만 가면 사람들이 아래 위로 훝어요. 뭐가 묻었나 한다니까요." 그만의 틀속에서 서로를 신경쓰고 평가하고. 사실 따지고 보면 '도토리 키재기인데 말이다.'

외국인들이 보면 다 비슷비슷해 보일 거다.


시드니에 온 지 4달가량. 처음에는 좋기만 했던 이곳이 이제는 애증이란 감정으로 조금 복잡해졌다. 길을 잃었단 생각도 든다.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한국을 떠올리면 답답하다.  가장 큰 이유가 '남 신경쓰기' '한국사회가 정하는 틀' 이다.  아마 한국에 가면 나이 걱정, 이직 걱정에 정신이 없을 거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바라볼 거다.


"그 나이에 이제 이직하기 힘들겠다. 결국 호주에선 뭘 한거야? 이제 그 나이에 결혼하기도 힘들겠네. 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살은 안 빼??" 이곳에서 길을 잃은 나에게 한국은 분명 정해진 '틀'의 길을 걷지 않으면 Loser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 시켜주겠지. 이곳에서 길을 잃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나에게 정답이 아니란 생각은 명확해지는 거 같다.


친구는 말했다. 그냥 있고 싶으면 있고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와.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마. 길을 잃었으면 그냥 그 위에 서있어.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상황을 굳이 애써 바꿔야 하는 강박에도 사로잡히고 싶지 않다. 그냥 길을 잃은채 서있는 나를 인정한 채 이 글을 올린다.


I am lost. 34세에서 35,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 중반 길에 접어든 싱글녀의 어줍잖은 고백. 이런 내 글이 그 누군가에겐 공감 또는 위로를 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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