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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Jan 04. 2016

퇴사후 #4 탈출 뒤 '애증' 그리고 '현실'

사는게 가장 문제, 헬조선 탈출 그 후

한국도 싫지만 어딜가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시드니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안정된 생활과 직장이 있다면야 삶의 질이 달라지겠지만, 고작 여행자라로 이곳에 발을 담근 소수민족 아니던가. 삶의 질면에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없다.


시드니는 애증의 도시라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처음 시드니에 도착해 ‘써큘러키’의 오페라하우스를 보았고, 락스라는 황홀한 곳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아, 이곳이 진정 시드니구나. I love 시드니’를 외쳤다.


시드니 생활 4개월가량. 여행에서 서바이벌로 변질된 이곳에서 나는  그 양면이라는 걸 적나라하게 경험하고 있다. 집도 절도 안정된 직업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시드니는 ‘애증’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다.


시작은 룸렌트였다. 호주,  다들 알겠지만 시드니는 시급이 높은 만큼 물가도 후덜덜하게 높다. 특히 집값(룸렌트)는 아찔할 만큼 후덜덜하다. 일단 이곳에선 쉐어하우스 개념보다 ‘룸쉐어’ 개념이 일반적이다. 집값이 워낙 높은 탓에 룸쉐어는 기본이다.


만약 독방을 쓰려면 아무리 외진 곳이라 해도 주당 200달러 정도는 돼야 한다. 시티(써큘러키-센트럴)에서 독방을 쓰려면 거의 300달러 웃도는 돈을 줘야 한다. 그러니까 한달에 방 하나 쓰려고 100만원 가까이를 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피스텔도 아니고 그냥 방 하나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시설이 매우 뛰어난 것도 아니다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 갔다. 물론 시티와 떨어질수록 방값이 저렴해지긴 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리 저렴하진 않다.


하지만 나로선 구매대행을 위해 번화가와 가까울수록 유리한 듯했다. 시장조사는 물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빠르게 처리하기 좋아서다. 그래서 선택한 첫 룸렌트는 달링하버 근처 딕슨스트리트의 한 아파트의 방이었다. 꼭대기에 수영장도 있었다. 로비만 보면 무진장 럭셔리 해 보이는 그런 건물이었다. 하지만 후에 알게 됐다. '건물'만 그랬던 거구나.


16층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통은 집이라고 안하고 유닛이라고 한다), 상상도 못한 세계가 펼쳐졌다.  처음 계약할 땐 몰랐다. 방 2개 딸린 평범해 보이는 이 집엔 무려 11명이 살고 있었다. 내가 사는 방엔 나를 포함한 여자 4명, 다른 방에 남자 4명이 있었다, 거실에 주인(필리피노) 가족 3명이 텐트를 친채 살았다. 이게 뉴스에만 나오던 거실쉐어였다.


처음엔 의기양양했다.  한방에 10명이 있는 백패커에도 묵은 나다. 뭐 문제될 거 있어? 하지만 오산이었다. 한달 내내 ‘지옥에 사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구조였다. 내 방엔 침대가 나란히 4개가 놓여있었다. 2층 침대 두 개가 놓여져 윗공간을 활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침대를 일렬로 나열해 놓은 방이었다.


당연히 침대로 빽빽한 방안에선 할 수 있는 게 잠자는 것 외에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이곳 주인은 이 방에 사는 베트남 친구가 사놓은 싸구려 책상도 이 친구만 쓸 수 있다고 했다, 화장실 안 서랍에는 각각 번호가 써있었다. 나는 가장 좁은듯해 보이는 세 번째 칸 서랍을 쓸 수 있었다.


싸구려 매트리스 위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가 쓰는 메트리스는 시중에서 20달러 정도란다.] 완성품의 침대도 아니고 싸구려 메트리스 위에서 잠을 청하는 꼴이란.



게다가, 일렬로 침대가 놓여진 탓에 왔다갔다 하려면 옆 친구 침대를 건드려야 했다. 문제는 내 옆의 룸메는 매우매우 예민했다. 스페인 사람은  열정적이다라는 이미지만 갖고 있었던 나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스패니쉬 나탈리아는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무언가 시끄럽다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매일 3-4시에 일을 나갔고, 기본 2시까지는 잠만 잤다. 아침 8-9시쯤 사람들이 움직일 때 잠시 눈을 떠 식빵이나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시 잠을 자는 식이었다.


그녀 때문에 방 안에서 뭘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처음 그녀와의 만남은 유쾌했지만 점점 그녀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워낙 예민한 탓에 집에 대한 불만 투성이었다. 그녀가 주무시는 동안 움직일 때마다 까치발을 들고, 옷장도 제대로 못 열고.. 키보드 소리 때문에 노트북도 제대로 못 썼다. 아니 점심시간까지 그렇게 신경써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더 큰 문제는 부엌에서 발생했다. 11명이 한집에 사는데 냉장고는 달랑 하나였다. 그것도 4명이 사는 우리집 냉장고보다 작은. 냉장고 한칸을 둘이 나눠 쓰는데, 물건을 조금이라도 넣으면 선반이 튕겨져 나갈 판이었다. 음료수 따위는 거의 사지도 못했다. 넣을 공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야채를 대량으로 사서 썬 다음에 그나마 공간이 있는 냉동실에 넣어 놨는데 웬걸 냉장고가 멈춰버림. 하도 많은 사람이 작은 냉장고를 공유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내 방 바로 옆에는 발코니가 있었다. 근데 이 발코니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이 발코니에는 매일 같이 필리핀 남자 친구들이 나와 담배를 폈다. 문을 조금이라도 열면 담배 냄새가 고스란히 들어왔다. 게다가 이들은 매주 금요일, 토요일 스피커 짱짱하게 해놓고 음악을 틀어댔다. 고성방가와 다를 바 없었다. 두어번 이들의 파티에 동참하긴 했지만, 방 안에서 이 소리를 들으면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엄청 오래된 세탁기는 항상 바빴고, 빨래가 끝나고 30분 정도만 가져가지 않아도 다른 이가 자신의 빨래를 넣어댔다.문제는 내 빨래가 속에 있는데도 그걸 보지 않고 걸레나 양말을 넣기도 했다.  


타운홀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라는 위치적 아름다움과 인터넷이 빠르다는 것 외에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한달 동안은 ‘악몽’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난 센트럴역 근처에 리모델링한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1주에 150불로 전집보다 1불이 비싸긴 한데 단 둘이서 한 방을 쓴다는 엄청난 이점이 있다. 그래서 보다 사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고 자유로워졌다. 모든 게 새것이라서 그 또한 좋다. 모든 게 깔끔하다.


그래도 문제는 있다. 사람이 문제. 파키스탄 친구가 거실쉐어를 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거의 Crazy였다. 나는 이 human 때문에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감까지 생기고야 말았다. 일단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이대는 바람에 결국 ‘갈등’이 팡 터지고야 말았다.


역시, 지옥은 어디에나 존재하는구나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헬조선이 있다면 이곳에는 헬쉐어라는 게 존재한다. 이 Hell에 대해선 다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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