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잔소리꾼이 되었을까

협력자가 아닌 관리자

by 나아선




“우리 집 대장은 누구지? 엄마잖아.”
남편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 말은 분명 나를 존중하려는 의도였고,
때로는 가족끼리 웃으며 주고받는 농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웃음으로 답할 수 없었다.
고백하건대, 그 말이 늘 싫었다.
대장이라는 이름으로 팔에 채워진 노란 완장과
입에 물린 호루라기가 꼴도 보기 싫었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도 완장을 차고,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손 씻었어?”
“밥 먹으라니까.”
“좀 치워.”
“그걸 거기 두면 어떡해?”

삑삑대는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소파에 기대 있던 가족들은 눈을 굴리며 흩어졌다.
때로는 그런 반응조차 시들했다.
매일 반복되는 말들은 냉장고 모터음처럼
지나치는 소음이 된 지 오래였다.

대장이 된다는 건 이런 의미였다.
겉으론 빛나는 왕좌 같았지만,
그 위엔 영예도, 권위도 없었다.

일상의 무질서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눈치 보게 만들며,
귀에 닿지도 않을 말을 반복해야 하는 자리.

그 자리는 결국 잔소리꾼의 자리였다.
대장이라는 이름은, 현실을 가볍게 포장한 얄팍한 허울일 뿐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완장을 차고,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원하지 않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아무 일도 굴러가지 않았다.

가정 안의 일은 대부분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막연함 위에 놓여 있었다.

밥상이 다 차려져도,
바닥에 장난감이 나뒹굴어도,
잘 시간이 넘어도,
내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뒤집어진 양말, 배수구에 빠진 젓가락,
가구 위에 쌓여가는 잡동사니까지.
그 모든 일들은 내가 지적하기 전까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반복적인 말과 확인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일상.
그 누군가의 역할은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 역할을 부여받는 순간, 가족은 둘로 나뉘었다.
시키는 자와 시켜야 하는 자.

“말해줘야 알지.”
“시켜줘야 하지.”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책임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나는 땅에 떨어진 책임들을 따라다니며 줍고 있다.
그렇게 일상의 무게는 점점 나에게로 쏠렸다.

그 피로감은 감정으로 흘러나왔다.
잔소리에는 찌푸린 인상과 깊은 한숨이 더해졌다.
남편에게 나는 기분 나쁜 지적을 하는 사람,
아이들에겐 피곤한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우스갯소리 속 아내와 엄마의 이미지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녀들은 시끄럽게 잔소리를 퍼붓는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로,
가족 위에 군림하는 대장처럼 그려지곤 했다.

왜 모두가 비슷하게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언제부터 잔소리꾼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걸까.

언젠가, 축복 속에서 발을 맞추며 나란히 걸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가족이 되었다.
가정은 함께 돌보고, 함께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여야 했다.

그러나 이 집엔 대장이 있다.
한 사람의 관리자가 지시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는 동안
나머지는 책임에서 벗어나, 수동적인 태도의 관리 대상자가 되었다.
이 수직적 구조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서로 협력하는 가족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웃고, 함께 감당할 때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임을 온전히 체감한다.

진정한 가족은 결코 혼자 모든 짐을 떠맡게 하지 않는다.
서로의 짐을 나누고, 서로에게 기대며, 힘을 합쳐 일상을 쌓아간다.

이제 나는 완장을 풀고, 호루라기를 내려놓는다.
잔소리가 있어야 겨우 유지되는 일상은,
어쩌면 함께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일상이었을지 모른다.

홀로 견디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우리는 서로의 힘이 되어
다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될 수 있다.



✍ 이 글은 『가사의 존재』라는 책을 준비하며 쓴 원고의 일부입니다.


목요일 연재
이전 05화나는 왜 내 이름이 그리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