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만 남은 사랑
아침 8시 20분.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벌써 20분이야. 밥은 그만 먹고, 빨리 양치하자!”
나는 시계를 보며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재촉했다.
“로션 발랐어? 자외선 차단제는?”
“빨리 와, 머리 묶어야지.”
“양말은? 왜 아직 안 신었어?”
“가방 메고, 신발 신고, 얼른 엘리베이터 눌러!”
아침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늘 찍어낸 듯 똑같았다.
아이를 제시간에 학교에 도착시키는 이송 기계의 출력 같았다.
나는 빠뜨린 것이 없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아이들은 허둥지둥 문을 나서다, 잠시 멈추더니 뒤를 돌아봤다.
“엄마, 사랑해.”
나는 그제서야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아이들의 눈에는 조금의 숨참과 기다림이 섞여 있었다.
아차 싶었다. 나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엄마도. 엄마도 사랑해.”
뒤늦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아이들은 이미 손을 흔들며 문틈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알게 됐다.
내가 빠뜨린 게 무엇이었는지.
식사도 챙겼고, 물통도 챙겼고, 가방도 챙겼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온기는 챙기지 못했다.
마주 보는 눈빛도, 웃으며 나누는 대화도 사라져 있었다.
아침 내내 아이들과 함께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메마른 공간 속에서, 본능적으로 목이 마르다는 걸 알아채고 있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분주히 움직였지만, 문득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한 모든 일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래서 더 잘 챙기고 싶었다.
밥을 챙기고, 옷을 챙기고, 준비물을 챙기는 그 모든 일들이 사랑의 증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어딘가 허전했다.
분명 사랑이라 믿었는데, 어느 순간 내 안에 들어찬 건 사랑이 아니라 끝없이 늘어선 할 일 목록이었다.
그 안에서는 기능이 감정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능은 나를 안심시켰다.
정돈된 일상을 유지하고, 시간을 절약하며, 실수를 줄여주고, 성실함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기능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는 못했다.
‘빨리’를 반복하는 사이 ‘사랑한다’는 말은 사라졌고,
시계 바늘을 바라보는 동안 아이들의 눈빛은 잊혀졌다.
마음을 나누어야 할 집은 어느새 과업 수행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 공간 안에서는 농담도, 실수도 허용되지 않았다.
“장난 그만해.”
“나중에 하자.”
빠르게 돌아가는 기능의 톱니바퀴 속에 따뜻함이 뿌리내릴 자리는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 체크리스트를 채우며 사랑이라 믿었다.
부족함 없이 성실히 임했으니 다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체크 표시를 했다.
그러나 사랑은 이미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기능만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런 하루가 쌓이고 해마다 반복된다면, 그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서늘하게 멀어져 가는 자녀들의 뒷모습과, 지울 수 없는 허전함만이 남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이제 알아차려야 한다.
기능을 사랑이라 착각한 나를.
그리고 여전히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을.
사랑은 멈춤 속에서 자란다.
잠시 머무는 시선 속에서,
붙잡아주는 손길 속에서,
오랜 기다림 끝의 미소 속에서.
사랑은 그렇게 피어난다.
나는 바쁘고 힘든 일상 속에서 속도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시간을 아끼려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덜 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늘어선 목록 뒤에 숨어, 가장 먼저 건네야 할 온기를 미뤄왔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하루는 문제 없이 흘러갔다.
모두가 제때 먹었고, 제때 잠들었다.
휴지통은 비었고, 바닥은 반짝였다.
그런데 오늘 하루의 가장 선명한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려 하면, 기억이 희미해진다.
나는 이제 아침을 느리게 걸어본다.
빠른 발걸음 속에서 놓친 것들을, 잠시 멈춰 마주한 눈빛과 미소 속에서 되찾는다.
그제야 깨닫는다.
분주하게 달려온 시간 속에는,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는 걸.
✍ 이 글은 『가사의 존재』라는 책을 준비하며 쓴 원고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