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아닌 나의 삶으로
새댁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의욕으로 가득했다.
처음 해보는 집안일은 어렵고 낯설었지만,
그때만 해도 모든 일은 의미 있고 설레는 경험이었다.
서툰 요리도 식탁에 올려두면 기뻐하는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사진을 남기곤 했다.
따뜻한 밥 냄새, 잘 마른 수건, 깨끗하게 정리된 방은
나에게도 뿌듯함을 주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그 일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당연한 것이 되어갔다.
작은 성취들도 서서히 빛을 잃었다.
가족들은 더 이상 특별히 기뻐하지 않았고,
나 또한 더는 설레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은 떠났지만, 일은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있었다.
의욕으로 시작했던 모든 일들은
그대로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의무가 되어 돌아왔다.
가사노동은 그렇게 '해야 할 일'이 되었다.
해야 할 일.
짧은 말이지만, 묘하게 무겁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순응이 되고, 수동이 되고, 타인의 요구가 되었다.
해야 할 일이란 말은 삶의 균형을 기울일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말이 만들어낸 경사 위를 굴러내리듯 살아갔다.
그러나 그 일들은 정말 해야 할 일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내가 그렇게 믿어온 것이었을까.
돌이켜보면 그 믿음에는 근거가 없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결혼 후 직장을 다니면서도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었다.
나는 그것을 배려이자 의무라 여기며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 믿음은,
노동이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쏠리면서 생겨난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의무는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았다.
늘 불균형한 권력의 맥락 속에서 태어나,
특정한 누군가의 몫으로 굳어져왔다.
그렇지만 가사노동은 본래 한 사람의 의무가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고, 공간을 정리하고, 시간을 돌보며
단순히 집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이 노동은 살아 있는 모두의 바탕을 이루는 삶의 기반이다.
그 기반이 한 사람의 희생 위에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의무라는 이름이 지닌 보편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 믿음의 고리를 끊어내려 한다.
가사노동을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다시 보려 한다.
그제야 비로소 노동 속에서 타인이 아닌 나의 존재를 발견한다.
나 자신이 노동의 주체가 되어 삶의 중심에 바로 설 힘을 얻는다.
노동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다.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 ‘내가 선택했다’는 내적 감각.
일의 출발점이 타인이 아닌 나에게 있다는 자각.
즉, 자유를 체감하는 일이다.
인간은 자유 없이는 삶의 통제권도, 존엄도 얻기 어렵다.
반복되는 가사노동 속에서 존재가 흐려진 듯한 감각,
서로 눈치보고 눈치를 주며 나뉘게 된 가족,
서로에게 지나치게 기대어 스스로 서기 어려운 모습까지,
모두 자율성을 잃어버린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삶 속에서 자유라는 감각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해야 한다는 말 대신,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택하는 순간.
타인의 요구보다 나의 느낌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순간.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잠시 멈추는 순간.
가족 모두의 삶을 떠맡는 대신,
각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도록 돕는 순간.
서로의 선택과 멈춤을 지켜보는 시선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를 체감한다.
작은 일상의 순간들이 모여,
내 삶을 스스로 살아간다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가정은 단순히 살아가는 공간을 넘어,
서로가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된다.
삶의 주인이 된 각자가 모여,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자율적 공동체로 거듭난다.
그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반복되는 생존의 루프 속에 갇히지 않는다.
잠시 멈추고 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새로운 도전과 호기심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삶의 기반을 지키는 동시에,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순간.
그때 비로소, 가사노동은 나를 묶는 의무가 아니라
나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일부로 온전히 자리한다.
✍ 이 글은 『가사의 존재』라는 책을 준비하며 쓴 원고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