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다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았다.
2025년 6월 28일, 토요일.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았다.
그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치매를 앓으신 지 꽤 된 할머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는 순간이 다시 오리라는 가능성 자체를.
그런데 오늘, 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할머니는 맑은 정신으로 나를 보고 "OO이”라 부르셨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모든 게 가만히, 할머니의 눈동자에 고인 나를 바라보는 시간 속에 머물렀다.
오늘의 할머니는 힘도 좋았고, 정신도 맑았다.
아이처럼 웃으셨고, 아이처럼 눈치를 보셨다.
어머니의 실수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할머니의 면회 초반부터 말다툼을 시작했고,
그 앞에서 할머니는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며 ‘아이처럼’ 눈치를 보셨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도 아프고 미어졌다.
자식들 앞에서 스스로를 ‘짐’이라 여기며,
“빨리 죽어야 너희가 마음 편할 텐데”라는 말을 꺼내는
그분의 입술에서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마주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어머니가 너무도 미웠다.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는 이 선물 같은 날을 당신이 망쳐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을, 더 오래오래 누리고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시간을 함부로 흔들어버렸다.
치매는 기억을 빼앗는 병이지만,
그 사람의 ‘존엄’까지 빼앗아가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여전히 ‘지금’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말을 하고, 삶을 산다.
그 말을 허공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한 사람의 이야기로 들어주는 태도는 사랑이다.
할머니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무뚝뚝한 말투 뒤로,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항상 안아주셨다.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전하는 분.
그리고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내가 가진 어떤 기질들, 따뜻한 리더십, 사람을 대하는 방식,
그 것들의 뿌리가 할머니였다는 것을.
나는 어머니보다도, 아버지보다도 할머니를 더 많이 닮았는지도 모른다.
굳이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할머니는 따뜻한 ENTJ였고,
나는 그분을 참 많이도 닮은 사람이다.
이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이 너무 아프고, 그래서 오늘이 너무 고맙다.
나는 할머니를 선택할 수 있다.
그게 어떤 의미로 들릴지라도,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나를 키운 건 당신이었다고.
당신이 나를 품에 안아준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내가 어릴 적, 세상을 처음 배워갈 때
세상을 따뜻하게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할머니가 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들이 나를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다.
그 사랑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사랑하는 할머니,
오늘 나를 알아봐줘서 고마워요.
이 하루를 나에게 선물해줘서 고마워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할머니가 원하셨듯 자주 보러 갈게요.
그리고 그 마음을 잊지 않을게요.
오늘의 기억, 오늘의 당신을.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