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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Oct 06. 2023

매일 '스테고'티를 입겠답니다

 "엄마, 스테고티 업떠"

 "어제 입어서 세탁기에 넣었지, 오늘은 다른 거 입자"

 "아니야 딴 거 시러, 스테고티!"


 아침부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머리에 스팀이 오른다는 게 이런 의미였던가. 어제 입었던 땀 냄새가 풀풀 나는 옷을 다시 입겠다는 아이의 어이없는 고집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앵그리버드처럼 눈꼬리가 올라갔다. 눈에 힘을 주며, 안된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에 아이는 주춤했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엄마 표정이 조금만 풀어진 거 같으면 똥고집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안 그래도 옷 고른다고 뭉그적거려서 어린이집 등원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현승이는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입고 갈 옷을 고른다. 몇 달 전만 해도 입혀주는 대로 입었는데, 어느새 또 컸는지 자아가 생겼다. 팬티부터 티셔츠, 바지, 양말까지 직접 골라 스스로 입는다. 그중에서도 공룡 스테고 사우르스가 앞 쪽에 그려진 민트색 반팔 티, 일명 '스테고'티를 가장 좋아한다. 네 살 아이에게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고, 엄마 도움 없이 스스로 해보려고 하는 것은 기특한 일이다.


문제의 '스테고'티


 문제는 죽어도 스테고티라는 점에 있다.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고 넘어지는 게 일인 아이에게 매일 같은 옷을 입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행히 새로 장만한 건조기가 있어 이틀에 한 번은 빨래를 돌려 입힐 수 있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참아줘야 하는데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집에 공룡이 그려진 옷이 스테고티 하나인 것도 아닌데 이것만 고집한다. 저항이 거세다. 미운 네 살인게 분명하다. 이렇게나 한 가지를 좋아할 수 있을까? 이 옷을 입으면 공룡이 된 기분일까?


 스테고티는 소재가 면이고, 하루 걸러 한 번씩 입다 보니 여름 한철 입었는데 낡아져 버렸다. 게다가 어린이집에서 오늘은 뭘 했는지 엄마가 궁금해하지 않도록 물감, 음식물 자국을 묻혀 흔적을 남겨 왔다. 자주 빨아 말리니 진한 민트색이 점점 옅어졌고, 아이의 서툰 옷 입기 능력 덕분에 목이 자유자재로 쑥 들어왔다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났다. 더 이상 그 옷을 입고 밖에 나가는 걸 지켜볼 수 없었다. 어떻게 버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같은 옷으로 사려고 알아봤지만, 단종되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옷을 바꿔보기로 했다. 아이가 직접 고르면 더 애착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새 옷을 살 때 함께 골랐다. 모바일 쇼핑이라 관심이 없을 줄 알았더니 직접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 올리며 티셔츠를 구경했다. 그러다 티라노가 그려진 남색 티셔츠를 가리켰다. "엄마, 이거 됴아" 내가 혼자 산다면 절대 안 골랐을 디자인이었다. 귀여운 캐릭터도 많았는데, 하필 무시무시하게 생긴 티라노를 고르다니. 다른 옷을 고르길 바라며 재차 확인했다. "정말 이거 괜찮아?" "응! 딘짜"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이번엔 아이가 입고 싶을 때 입을 수 있도록 같은 옷을 두 벌 샀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을 아이를 보고 당황하실지도 모를 어린이집 선생님께 상황 설명을 드리는 것은 덤이었다.


아이가 직접 고른 티라노티


 배송된 옷을 받아 들고 신나서 입어보려는 아이에게 물었다. "공룡이 왜 좋아?" "곤뇽 멋져, 곤뇽 됴아" 아이는 하회탈처럼 웃으며 말했다. 완벽한 대답이었다. 좋은데 이유가 어딨겠는가. 요즘 우리 집에 있는 아이 물건은 죄다 공룡이 그려져 있다. 옷뿐만 아니라 신발, 모자, 양말, 킥보드, 가방, 이불에도 잔뜩이다. 심지어 과자나 젤리도 공룡 모양을 찾는다. 아이가 하도 공룡 공룡 하니까 오해도 생겼다. 어느 날은 아버님이 물으셨다. "현승이가 공룡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그런 것만 사주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요. 또 사준다고 그냥 쓰는 성격도 아닌걸요" 가끔 불가피하게 아이의 공룡 사랑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쯤이야 백 번이고 해 줄 수 있다.


 그래, 엄마는 우리 현승이가 좋으면 그걸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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