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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Oct 21. 2023

엄마는 I, 아들은 EEEE

 "아들! 오늘은 놀이터 안 가면 안 돼?"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씩 웃어 보이고는 그대로 놀이터로 향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킥보드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엄마의 바람은 그저 허공으로 날아갈 뿐이었다. '그래, 집에 가면 텔레비전이나 본다고 할 텐데 놀다 가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고,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아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만들었다. 눈에서 멀어진 아이가 놀다가 행여라도 다칠까 싶어 걸음을 재촉했다. 어린이집 가방은 내 손에 들린 채였다.


 현승이는 바로 옆 아파트의 가정 어린이집에 다닌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한 뒤 전원한 곳인데 아이가 좋아해서 나도 99% 만족하며 보내고 있다. 모자란 1%는 집과 어린이집 사이에 있는 놀이터가 무려 4개나 있다는 점이다. 매번 하원할 때마다 마치 통과 의례를 거치듯 모든 놀이터에 들렀다 가려고 한다. 아이가 밖에서 논다는데 이보다 더 좋을 게 어디 있을까. 놀이터에서 동네 친구도 사귀고 사회성도 기르며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한다. 문제는 어미인 나에게 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엄마와 달리 현승이는 낯가림이 없다. 처음 보는 형, 누나, 친구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같이 놀자고 쫓아다니기도 한다. 수동적으로 따라만 다니는 게 아니고 "형아! 미끄럼틀 타자", "칭구야 여기 가자" 하며 같이 노는 친구들에게 원하는 것도 잘 말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은 모두 그런가 싶었다. 놀이터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낯선 아이와 같이 노는 것이 불편한 아이들도 있었다. 대게 현승이보다 나이 차가 큰 형, 누나를 따라다닐 때 일이 생겼다. 형이나 누나가 혼자 놀러 왔다면 괜찮았다. 내가 고맙고 미안할 정도로 잘 놀아줬다. 친구들과 같이 왔을 땐 이야기가 달랐다. 현승이가 걸림돌이 되었다. 트램펄린도 마음껏 탈 수 없고, 조그만 아이가 쫓아다니며 끼려고 하니 술래잡기도 어려웠을 게다. 보통은 내가 현승이를 불러 세우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린다. 하지만 따라가지 못하는 높은 미끄럼틀이나 잘 보이지 않는 놀이 기구 안쪽 구석진 곳에서 잠깐 놓친 순간에는 현승이가 무리 밖으로 내몰릴 때가 있다.


 "그만 좀 따라와 줄래?" 어떤 아이가 현승이에게 뱉은 말이다. 악의는 없어 보였으나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 아이 곁에 있던 동생은 현승이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보였다. 현승이와 같이 놀게 두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으앙" 하고 내 품으로 달려오는 아이를 보는 것은 어미인 내 마음에도 상처가 됐다. 거절의 기미가 보인다면 따라다니지 않으면 좋을 텐데, 아직 구분할 줄 모르는 현승이가 안타까웠다. 거절하는 아이도 미웠다.


 잘 노는 경우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친구들 역시 놀이터에 올 땐 엄마를 대동한다. 다칠 위험이 있고 놀이 기구 규칙대로 놀지는 않는지, 순서 때문에 친구들과 다투진 않는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그 친구 엄마의 접점이라고는 놀이터에서 하루 같이 노는 사이라는 것일 뿐.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일면식도 없었다. 아이의 나이, 어린이집은 어디 다니는지와 같은 통상적인 대화가 오고 가면 침묵만 흐를 뿐이었다. 아이를 지켜봐야 해서 휴대폰도 볼 수 없었다.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가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는 엄마들끼리는 삼삼오오 모여서 친해진 것 같았다. 낯선 이와 친해지는 데 오래 걸리는 나는 그게 어렵다. 피곤하다. '현승이가 친구를 만드는 데 내가 개입하는 것이 맞는 걸까' 생각하다가도, 한편으로는 개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온전히 아이를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매일 놀이터에 가다 보면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자연스럽게 생기려나. 집에 가고픈 마음을 꾹 눌러 담고 그런 순간이 올 때까지 인내하다 보면 해결될 수 있을까. 엄마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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