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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Aug 25. 2023

슈퍼키드인 줄 알았건만

 "현승이는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이 없어요!"

 "아휴, 큰일이네요."


 큰일? 원장의 말에 나와 남편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 원장과 마지막으로 상담하는 중이었다. 아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적이 있느냐는 원장의 물음에 나는 지난 30개월 동안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다고 자랑스레 답했다. 그런데 큰일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원장은 뒤이어 설명했다. "가정 보육하는 동안 아픈 적 없었다는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니면서 오히려 많이 아프더라고요." 나는 그럴 수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음 한 편으로는 우리 아이는 튼튼해서 아프지 않은 거라고,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며.


 현승이는 어린이집 가기 전 예방접종이나 건강검진 외에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 신생아 때 흔하게 나타나는 태열도 없었고, 열 한번 오르지 않아서 응급실에 가 본 적도 없었다. 강아지와 함께 살아서, 주택에서 자라서 아이의 면역력이 높은 것이라 생각했다. 어린이집을 보낸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찬 바람이 불면서 아이는 아프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 보니 아이의 몸이 뜨거웠다. 38.6도. 체온계의 화면이 빨간색으로 깜빡거렸다. 기침까지 하는 걸 보니 또 감기에 걸렸나 보다. '약 먹고 나은 지가 며칠 안 됐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 선생님, 오늘 현승이가 열이 나서 등원 못 할 것 같아요.


 체온이 38.5도가 넘으면 어린이집에 등원할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생긴 지침이기도 했고, 다른 아이에게 옮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36개월이 된 아이는 여전히 아팠다. 감기를 달고 사니 결석도 잦았다. 현승이는 겨우 보육료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을 만큼만 등원했다. 나머지는 병원행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현승이 맞죠?" 아직 접수도 하지 않았는데, 간호사가 아는 체를 했다. 요 근래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자주 방문한 탓이다. 지인이 늘어 반가워해야 할지. "네, 맞아요" 어색한 미소로 대답하지만, 내 입안은 99% 카카오를 씹은 것처럼 쓰디쓰다. 건강하니까, 튼튼하니까 당연히 아프지 않은 것이라고 너무 쉽게 단정했었나 보다. 슈퍼키드인 줄 알았건만, 그냥 키드였다.


 아이가 아플 때 자주 보는 '하정훈의 삐뽀 삐뽀 119 소아과' 영상에서 의사는 요즘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영유아기를 보낸, 일명 '코로나 베이비'가 감기에 걸리면 잘 안 낫고 오래간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차원에서 했던 마스크와 거리 두기가 코로나뿐만 아니라 감기, 수족구와 같은 감염병까지 예방했단다. 이 아이들이 거리 두기 완화로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면서 연달아 아프다. 200종이 넘는 감기 바이러스에 대해 면역이 생기려면 일 년에서 일 년 반 정도는 감기를 달고 살 수 있다고. 요약하자면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말이다.


 괜찮다니 다행이지만, 아이가 최대한 덜 아프고 지나갈 수 있도록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병원이 문 닫은 날이나 한밤중에 갑자기 아플 경우를 대비해 상비약을 챙겼다. 현승이에게 잘 드는 해열제의 종류도 알게 되었다. 필수 아이템도 마련했다. 기침이 많이 날 때 쓰는 의료용 분무기 네뷸라이저와 콧물 흡입기다. 기침이 심한 날에는 네뷸라이저를 쓰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게 했다. 기침 때문에 아이가 잠을 깊게 못 자면 베개를 평상시보다 높게 해주면 덜했다. 콧물이 많이 나올 땐 가제 수건을 두, 세 개 챙겨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러면 선생님이 아이의 목에 수건을 걸어주고, 아이가 스스로 닦을 수 있도록 했다. 약은 선생님이 따로 챙겨 먹이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등원 전, 하원 후, 잠자기 전에 먹였다.


 아이가 아픈 만큼 엄마도 경험치가 쌓여 베테랑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고 엄마의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밤새 기침을 하느라 잠 못 들고, 콧물을 훌쩍거리는 모습이나 열이 올라 바짝 마른 입술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마냥 편치는 않다. 아이가 크면 해결될 것이리라. 아팠다가 낫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면역력이 높아지고, 결국 웬만한 감기는 이겨낼 것이다. 어쩔 수 없다지만 그때까지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낫고, 조금 덜 아프길 바랄 뿐이다. 현승이에게 면역 굳은살이 생기면 슈퍼키드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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