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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Jul 21. 2023

수다쟁이가 될 조짐이 보입니다

 "엄마, 아기 두 개 같이"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남편과 나, 아이 셋이서 차를 타고 시장 구경 가던 길이었다. 남편이 아이에게 딱 한 개 남은 젤리를 달라고 했다. 아이는 안된다며 입에 쏙 넣었다. 남편은 삐진 척 말했다. "아빠 시장 안 갈래, 집에 갈 거야" 그랬더니 엄마랑 둘이 가겠단다. 아빠의 말에 적당한 대답을 했다는 것과 둘의 개념을 이해했다는 것에 나는 감탄했다.


 아이는 부쩍 늘어난 언어 구사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한두 번이 아니다. 순식간에 불어난 아이의 표현력은 나를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방금은 자기가 밥풀을 흘려 놓고는 그걸 주워 먹는 강아지에게 한 소리 하던 참이었다. "비비야 밥풀 냠냠 안 돼! 배 아파" 야무지게 잔소리를 했다. 나는 당황해서 멍하니 있다가 남편과 큭큭 웃으며 "맞아, 비빅이는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지? 현승이도 떨어뜨리지 말고 조심히 먹자"라고 정리했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즐겁다. 아니, 즐거움을 넘어서 감동이다. '오늘은 아이가 무슨 말을 할까, 어떤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해줄까'하는 기대에 부푼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새삼스레 기다려진다. 아이는 나와 대부분같이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엄마가 알려주지 않은 단어를 적절한 때에 툭툭 던진다. 알 수가 없다. "홍차, 홍차" 무슨 말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놀이터에서 줄을 잡고 올라가거나, 음료수 뚜껑이 잘 안 열릴 때 말했다. '영차, 영차'였다. 어떻게 이해하고 써먹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단어뿐만이 아니다. 논리도 생기고 문장도 꽤 길어졌다. "엄마 더워, 메롱(아이스크림) 주야요(주세요)" 더우니까 아이스크림을 먹겠단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도 먹겠다고 하면서 말하는 모양이 우습다. "아기가 도와줘요?" 음식을 하거나 빨래를 개고 있으면 옆에 와서 도와줘도 되냐고 물어본다. 됴아조요? 도야죠? 세 글자 같은 네 글자 발음. 발음을 글로 적기 어렵지만, 그냥 들어서는 '도와줘요'인지 알 수 없다. 엄마만 알아들을 수 있는 '도와줘요'다. 남편도 아이와 대화하다가 내 눈치를 살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그것도 몰라' 우쭐대는 표정으로 남편에게 살짝 귀띔해 준다. 아직은 엄마의 해석이 필요한 단어들이 많다.


 그래도 조금만 집중하고 상황을 살피면 아주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다. 거기에 몸짓과 표정까지 더해지면 이제는 대화가 통한다. 아이와 함께 블록 쌓기를 하다가 내가 실수로 넘어뜨린 적이 있다. 아이는 양손의 검지를 쭉 펴서 이마 양옆에 갖다 대고는 화난 표정을 짓는다. "엄마, 아기 화나요!" 어이가 없지만 "미안, 엄마가 실수했어. 다시 쌓아볼까?" 하고 사과를 했다. 정말 화가 났는지, 사과를 해서 풀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금방 웃어 보인다. 낮잠 시간에 전화가 와서 받기라도 하면 "엄마, 시꾸러워요. 아기 코자"라고 말한다. 나 참, 기가 막힌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난다. 그런데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잘 크고 있었다.


 아이가 컸다고 느낄 때가 언제일까?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 혼자 숟가락 들고 밥 먹을 때? 나는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있을 때(백 퍼센트 주관적인 의견입니다)라고 생각한다. 이제 37개월 현승이는 영아가 아니라 유아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번에 새로 등원한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이가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도 잘해요"라고 했다.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기쁜 일이었던가. 말이 느려 걱정했던 지난날이 무색하게 아이는 쑥쑥 크고 있었다. 비록, 수다쟁이가 될 조짐이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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