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그랬다. 여느 날처럼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갔다. “현승아, 안녕!” 아이와 함께 나온 친구가 마중 나온 엄마 손을 잡으며 잘 가라고 인사했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간단한 인사말이었지만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우리 아이는 아직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데.' 생각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일찍 보낸 건 말이 느려서였다. 그래도 6개월을 친구들과 지내며 말이 많이 늘어 괜찮을 거라고 기대했다. "엄마, 아기 거미 무서워요"라든지, "엄마 빨리 안돼! 아기 쾅 해, 천천히"와 같이 단어 나열이지만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래보다 여전히 느렸다. 안일했다. 제법 정확하게 '현승'이라고 발음하는 아이 친구를 보고 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현승이는 스스로를 '아기'라고 지칭한다. '은우'나 '이든'이처럼 발음하기 쉬운 친구 이름은 가끔 말하기도 하는데, 도통 자기 자신은 불러주지 않았다. 따라 해 보라고 한 글자씩 불러주며 다독여봐도 '아기'를 고집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담임 선생님과 상담했다. 선생님은 코로나 때문에 올해 유난히 아이들의 편차가 크다고 했다. 말을 잘하는 아이들은 정말 잘하고, 더딘 아이들은 현승이보다도 표현을 안 한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어떤 친구는 발달 센터를 다닌다고도 했다. 발달 센터라니. 치료를 받게 한다는 것이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어머님, 발달 센터가 나쁜 것은 아니에요. 그 친구는 표현력도 늘었고, 행동도 훨씬 차분해졌어요" 고심 끝에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아이 상태를 빨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길로 평이 괜찮은 센터를 찾아 예약했다.
예약 당일, 어린이집 대신 아이와 함께 센터로 향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센터장과 검사를 진행했다. 센터장이 아이가 장난감으로 노는 것을 관찰하는 동안 나는 설문지를 작성했다. 영유아 발달 검사 문항과 비슷했지만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검사 결과는 얼마 걸리지 않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이의 언어 수준은 또래보다 6개월 정도 느렸다. 하지만 단순히 느린 것일 뿐. 아이가 놀이하는 모습을 관찰했을 때 인지나 다른 발달은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놀이 규칙에 맞게 상대와 상호작용하며 노는 것으로 보아 큰 문제가 없단다. 친구의 이름은 말하는데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현승'의 발음이 어려워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센터는 더 다닐 필요 없지만,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전문가의 '괜찮다'라는 말을 들으니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센터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매주 목요일을 '엄마랑 노는 날'로 정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놀이동산에서 차례 기다리는 것을 연습했다. 키즈 카페에서 처음 만나는 친구와 놀기도 하고, 장난감을 양보하기도 했다. 형이나 누나 또는 아이보다 말을 잘하는 친구와 이야기하며 노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또래가 많은 어린이집에 보낸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그래 맞다! 어른도 하물며 어떤 일을 해내는 것에 각자의 속도가 있는데, 아이라고 다르겠는가. 나부터도 남 보다 못하는 것, 서툰 것이 있지 않은가. 아이는 결국 해낼 것이다. ‘현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하기 힘들어 보인다면 어미인 내가 도와줄 것이다. 느려도 괜찮다. 잘 크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