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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Jun 02. 2023

결국, 개털 엔딩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날씨가 따뜻해지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귓가에 이 노래가 들린다. 봄이 오면 신혼 초에는 남편과 함께 꽃을 보러 자주 갔다. 개나리, 진달래, 유채꽃 가릴 것 없이 이쁘다는 곳은 다 찾아다녔던 것 같다. 여의도에서 살았으니 벚꽃은 뭐,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연례행사처럼 꽃구경을 다닐 줄 알았다. 비빅이와 함께 살기 전까진.


 올해로 4살이 된 비빅이는 시바견이다. 생후 50일 무렵에 데리고 왔는데 벌써 세 번째 봄을 함께 맞이하고 있다. 키우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나의 봄이 이렇게 바뀔 줄 몰랐다. 봄이 되면 강아지는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멍빨'. 멍멍이 빨래라고 들어봤는가. 강아지 목욕 시키는 것을 말한다. 평소에는 산책 후에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씻긴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는 털이 잘 마르지 않아 웬만하면 피한다. 날이 따뜻해지면 추운 겨우내 간직해 두었던 꼬순내를 대대적으로 벗겨낸다. 진드기 같은 벌레들을 피할 준비도 해야 한다. 외부 기생충, 심장 사상충 예방약을 챙겨 먹이는 것이 그런 준비다. 비빅이는 연 1회 맞아야 하는 광견병 예방접종도 봄에 맞는다. 이 약은 예방접종임에도 꽤 독해서 하루 정도는 긴장하며 지켜봐야 한다.


 꽃향기만 불어와도 모자랄 판에 미세먼지며 황사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후각이 사람보다 몇 배는 예민한 비빅이에게 이 또한 독약이다. 봄에 산책할 땐 나가기 전에 날씨 앱을 항상 확인한다. 산책을 안 하면 안 되냐고? 그럴 수 없다. 비빅이는 밖에서만 볼일을 본다. 마당도 자기 집인 줄 아는지 이틀 정도 참아야 겨우 찔끔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두렵고 고된 업무는 그의 털을 관리하는 일이다. 겨울 동안 피모를 따뜻하게 덮어주었던 복슬복슬한 털을 모공들이 한꺼번에 뱉어낸다. 빠진 털이 눈에 붙어 알레르기성 눈곱이 생기는 비빅이를 위해 2주 정도 매일 빗질한다. 이 정도면 벚꽃놀이의 여유는 언감생심이다.


 이제는 여의도 벚꽃길은 가지 않는다. 유채꽃을 보러 제주도 여행을 떠나지도 않는다. 그보다 산책길에 우연히 마주치는 개나리, 진달래가 더 반갑다. 카메라를 들이 대면 그 앞에서 활짝 웃어주는 비빅이를 보는 것이 더 기쁘다. 산책하다 삐져나오는 털을 손으로 쏙쏙 뽑아내는 그 시원함이 더 즐겁다. 올해도 봄이 왔다. 그리고 꽃도 폈다. '봄바람 휘날리면, 흩날리는 개 털들이'. 울려 퍼질 우리 집엔 내 사랑 비빅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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