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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Jun 03. 2023

아기와 시바는 사랑이라며!

 "죄송하지만, 안됩니다."


 다들 단호박을 드셨나. 여행 가고 싶어서 숙박 문의를 하면 열의 여덟은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한다. 나는 주기적으로 가족 여행에 도전하고 있다. 쉽지 않다. 어린아이와 중형견을 함께 받아 주는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반려견과 동반할 수 있는 펜션의 수도 적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소형견만 가능했다.


 작년 여름엔 운 좋게 중형견이 하루 묵어도 된다는 숙소를 찾아냈다. 먼저 전화로 문의 후 예약했는데, 마당에서는 목줄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중형견이라 추가로 비용도 지불했다. 차로 세 시간 정도를 달려 기분 좋게 놀러 갔다. 도착하니 전화받았던 사람이 아닌 다른 주인이 맞아주었다. 그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큰 개는 안되는데..", "전화로 이미 문의하고 온 거예요!" 난 기분이 상해 퉁명스럽게 답했다. 모처럼 놀러 왔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머무는 내내 만족스럽지도 못했다. 비용은 일반 펜션에 비해 비싸면서, 특별한 것도 없었다. 구석진 곳에 개털도 보였다. 강아지들이 지내다 가는 곳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썩 유쾌하진 않았다.


 어느 날은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강아지 운동장을 찾아갔었다. 아이가 주가 아닌 장소라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어려웠다.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에도 대비해야 했다. 다른 강아지가 달려들지 못하도록 지켜봐야 했고, 반대로 아이가 갑자기 다가가 놀라게 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당일로 쉬러 가려고 해도 장소 찾기가 힘들었다. 강아지가 갈 수 있는 곳은 노키즈존, 아이가 재미있어할 만한 곳은 강아지가 입장할 수 없었다. 우리 강아지는 시바견이라 더 힘들었다. 시바견의 특성 중 하나가 더러운 성질머리라 거절하는 곳이 많았다.


 그래도 여행은 포기할 수 없어 캠핑카를 렌트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펜션보다는 불편할 테지만 그래도 '우리끼리니까 편하게 놀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유에서였다. 역시나 안된단다. 시바견 털이 차 시트에 박히면 잘 안 빠져서 청소가 어렵다고 한다. 자꾸 거절당하다 보니 여행 가기가 꺼려졌다. 아기와 시바는 사랑이라면서,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이쯤 되니 없던 버킷리스트마저 생겼다. 캠핑카로 여행 다니기! 아이들과 남의 눈치 안 보면서 여행 다니고 싶다. 캠핑카는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에 작은 주방과 침실이 있으면 좋겠다. 옹기종기 비좁게 모여 잠들어야 하더라도 마음만은 편할 것 같다. 여기에 화장실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요강처럼 나중에 내용물을 직접 치워야 한다지만, 급할 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어디인가. 여행지를 정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도 재미있겠다. 산책하기 좋은 곳에서 쉬었다 가고, 밤하늘이 이쁜 곳에서 잠을 자는 그런 여행 좋지 않은가. 아이가 더 크기 전에, 강아지가 더 나이 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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