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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Jun 07. 2023

산책은, 고단하지만

 산책,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을 말한다. 내게 산책은 조금 다르다. 휴식을 위한 일은 아니라는 것. 나는 하루에 세 번 강아지와 함께 산책 간다. 우리 집 강아지, 비빅이는 밖에서만 볼일을 보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엔 하늘만 쳐다본다. 비가 잠깐 그치는 순간, '똥책'을 해야 한다. '똥책'은 대소변을 목적으로 하는 10 분 정도의 짧은 산책을 말한다. 눈이 오는 겨울엔 16킬로의 뚠뚠이를 들고 다닌다. 눈 위에 뿌려진 제설제를 밟으면 발을 다칠 수 있다. 요즘같이 해가 뜨거운 날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나간다. 한낮에는 아스팔트 길이 달궈져서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비빅이와 함께 산책하는 것은 물리적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혼자 걸어갈 땐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너무 귀여워요, 만져봐도 될까요?" "살이 많이 쪘네, 운동 많이 시켜야겠어요"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했다. 한 시간 산책하면 한, 두 명은 꼭 말을 붙이니 꽤 높은 확률이다. 문제는 나다. 낯선 이와의 대화가 어려운 나는 이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찰나의 순간, '대답을 해야 할까? 하지 말까? 해야겠지?' 하며 고민하기 일쑤였다. 내가 집순이라 매일 외출하는 것도 힘들었다.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고, 영화관보다 티브이 보는 것이 더 편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평소엔 외출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변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도 곧잘 한다. 오히려 내가 먼저 강아지와 인사해도 되냐고 묻기도 한다.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질문하고 대답하기가 가능해졌다. 4년 동안 키우면서 지식이 는 것도 한몫했으리라. 대부분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비슷한 이야기가 오고 가서 경험치가 쌓였을 수도 있겠다. 거절과 무시도 잘한다. 무례하게 강아지를 만지려는 사람에게 "강아지가 싫어하니 만지지 마세요" 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또 "어머, 산에 개를 왜 데려와."라고 말하는 사람은 무시하며, 눈빛으로 말한다. '산이니까 데려오지, 놀이동산에 데려갈까 그럼'.


 강아지의 세상은 보호자라고 한다. 비빅이는 하루 종일 오롯이 나만 본다. 일하고 있으면 조용히 내 발밑에 등을 붙이고 기대어 눕는다. 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면 나가는 줄 알고 잽싸게 어디선가 달려온다. 임신했을 때 함께 운동해 준 것도 비빅이였다. 우울한 날 홀로 앉아있으면 슬그머니 옆에 와서 같이 있어 준다. 산책하면 이번엔 내가 비빅이만 본다. 킁킁 냄새 맡는 동그란 코, 작은 소리에도 쫑긋쫑긋하는 귀,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 씰룩씰룩 궁둥이, 발랄하게 흔들리는 꼬리. 앞장서서 걷는 뒷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비빅이는 나를 사랑해 주고, 위로해 준다. 비록 산책은 고단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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