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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Jun 23. 2023

우리집 시바견 사냥꾼

OO가 우리 집 시바를 잡는구나

 우리 집 강아지, 시바견 비빅이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양반이다. 팔자걸음으로 느릿느릿 걷는 것은 기본.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뛰는 일이 없다. 산책하다 만난 개가 인사하자고 꼬리를 흔들거나, 개들이 경계하며 짖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든지 말든지 본체만체하며 본인 갈 길 간다. 표정 변화도 거의 없어서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밀당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다가가 제 몸을 내어주다가도 볼일이 급할 땐 쳐다도 안 보고 지나간다. 도도함 그 자체다. 짖지도 않고 순한 얼굴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산책하다 만나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런 양반견 비빅이가 벌벌 떨고 있을 때가 있다. 바로 우리 집 시바 사냥꾼이 나타났을 때. 사냥꾼이 나타나면 배를 뒤집고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마당에 누워 쉬다가도 귀가 안테나처럼 쫑긋쫑긋하고, 동공이 흔들린다. 등 위로 말려있던 꼬리는 뒷다리 사이로 숨기고 오두방정 뛰어다닌다.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우리 집 시바 사냥꾼. 여름이 오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그, 바로 파리다. 어이가 없다. 16킬로 중형견 덩치로 파리를 무서워한다니 가당키나 한가. 자기 눈동자보다도 작은 곤충이 그렇게나 두려울까.


 그렇다고 모든 곤충을 겁내는 건 아니다. 잠자리나 나비는 따라다니며 폴짝폴짝 잘도 뛴다. 사마귀나 메뚜기 같은 큰 곤충은 장난감처럼 발로 툭툭 치며 만지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파리가 날아다니면서 내는 '윙윙' 소리 때문일까? 비빅이가 소리에 예민하기는 하다. 지금은 사이렌 소리가 나는 아이 장난감 덕분에 무뎌지긴 했지만, 예전엔 산책하다 구급차라도 지나가면 큰일이었다. 나름 안전한 곳을 찾는지 구석진 곳에 숨어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소리야 크고 시끄러우니까 이해할 수 있다. 파리는 도대체 왜? 나 모르는 사이에 마당에서 놀다가 벌이라도 쏘인 적이 있었을까. 벌도 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니까 무서워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렇지. 겁에 질린 표정과 몸짓을 보고 있자면 귀신이라도 나타난 것 같다.


 벌레가 달라붙을 만한 쓰레기는 치운다고 치우는데도 한 번씩 파리가 등장한다. 나타나기만 하면 그날은 하루 종일 겁에 질려 낑낑 울고,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아주 당혹스럽다. 그냥 두고 본다면 '시바 스크림'이 더해져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시바 스크림'은 시바견의 전매특허 소리 지르기 스킬로 병원에서 주사를 맞거나 목욕같이 싫어하는 일을 강요받을 때 들을 수 있다. 소리가 매우 크고 높아서 자칫 동물 학대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얼른 원흉을 잡아서 보여줘야 한다. 엄마도 벌레에 관해서는 비빅이 만큼 겁쟁이지만, 아빠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를 위해 엄마가 힘을 내보는 수밖에. 우리 집 비빅이 사냥꾼, 파리! 다 쫓아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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