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입니다.
언제부터가 시작이었을까. 우리 가족의 감기 릴레이 말이다. 햇살이 따스해지기 시작한 4월. 반소매는 춥고, 긴소매는 고민스럽던 시기. 역시 7부 소매를 만든 사람은 현자였구나. 감탄하던 딱 그즈음이었다. 이른 겨울, 한 겨울 다 지나고 봄이 되려니 감기러시가 우리 집 현관 앞에 배달됐다. 비염, 꽃가루 알레르기, 봄철 결막염을 쓰리콤보로 보유하고 있는 도담이가 잠을 자다 코를 훌쩍, 눈을 비비고 손목을 긁으면 쿵, 내려앉는다. '시작이구나.'
그래도 예년에는 알러지일 뿐, 감기와 결착되지 않아 한 달을 선방하면 이 고난을 잘 이겨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계절성으로 치부하기엔 심상찮게 콜록 인다. 아니 쿨럭인다. 다음은 도동이 차례. 다행히 콧물 외에는 큰 증상이 없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5월은 다르겠지, 날이 더워지면 감기야 뭐, 오겠어? 인간은 이토록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간다.
기침이 잦아진 도담이를 보며 안도하기를 잠시. 5월이 되기 바쁘게 몹쓸 어떤(명확하지 않은) 바이러스가 노크 없이 나와 도동이에게 들어왔다. 오죽 아팠으면 날짜도 기억한다. 5월 11일. 도동이와 나의 열이 시작됐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아픈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 것이다. 38도 이상의 열이 내려갈 줄을 모르고, 몸은 사시나무가 형님 할만치 떨렸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프고, 손목 발목 어느 것 하나 삐걱대지 않는 것이 없다. 누렇다 못해 연둣빛의 콧물이 끝도 없이 나오는 이 불쾌한 상황. 신기할 정도로 증상이 비슷한 걸로 보아서는 도동이와 나는 같은 녀석의 침공을 받은 게 분명하다.
1도의 차이가 무섭다고, 38.5도의 엄마가 39.5도의 아기를 부둥켜안고, 업고, 달래며 잘 견뎌내기를 응원한다. 우리 둘의 체온이 더해져 도동이를 안으면 완전히 핫한 모자가 되어버렸다. 땀이 뻘뻘 나는데 용을 써서 그런지 내 체온은 더 올랐다. 나보다 여리고 더 아픈 아이는 업어 달라며 이불장 제일 아랫칸에 처박아둔 아기띠를 기어이 찾아 끌고 온다. 아플 때는 역시 엄마인 건지, 동병상련이라 그런 건지 멀쩡한 아빠에겐 업히지도 않는 도동이다. 기특하다 해야 하나, 야속하다 해야 하나. 무튼 함께 아픈 우리니 전염 따위 생각 없이 물고 빨며 긴 밤들을 보냈다.
새벽 3시 25분. 약기운에 몽롱해 도저히 일어날 수 없, 아니 정말 일어나고 싶지 않은 밤이 있었다. 순간 너무 울컥 속이 상했다. 계속 보채고 우는 아이가 순간 원망스러웠던 건지, 이 상황이 너무 힘들었던 건지. 아마 후자 쪽이었겠지. '모른 척하고 그냥 자면 칭얼대다 포기하고 그냥 자는 건 아닐까.. 아... 아직 해열제를 다시 먹일 타이밍도 오지 않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달래주는 것 밖에 없는데... 제발 그냥 자.. 제발 다시 잠이 들기를.'
이런 내적 갈등으로 숨소리조차 아껴 뱉었건만 고민을 하는 몇 분의 시간 동안 아이의 칭얼댐은 큰 울음으로 이어졌고, 일어나 아이의 몸을 닦이고 아기띠를 가져와 안고 둥가둥가 집을 휘휘 돌았다. 걸음 하나를 내딛을 때마다 나의 볼을 타고 흐르던 물이 아이의 이마에 똑똑 떨어졌다. 아이는 지쳤는지 제 얼굴에 비가 내리는지도 모르고 색색 잠이 들었다.
긴긴밤을 4번 더 보내고, 5일 차 오후가 되어서야 고열이 잦아들었다. 기침과 콧물도 분수령을 넘어 열기를 잃었고 아이는 컨디션을 회복했다. 다시 장난꾸러기 모드로 생귤한 텐션을 되찾았다. 휴, 다행이다.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 거다. 자, 이제 문제는 엄마의 회복이다. 아이가 회복될 때까지 엄마는 단전에 있는 힘까지 끌어모아 우선의 아이를 살리고, 자신의 상태를 체크할 여력을 잃는다. 아이가 열이 떨어지던 날 내 몸은 비명을 지르듯 극심한 오한과 열, 근육통을 폭발시켰다. 한숨의 잠도 이루지 못했고, 서러움에 베개가 촉촉했다. 그래도 마음은 평온했다. 내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아프기 시작했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까.
코로나도 독감도 아니라는데(검사를 두 번이나 했다.) 극심하게 찾아온 고열과 몸살은 열흘 째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중이다. 유행하고 있는 두 어가지 중 하나겠지만 검사가 무색하게 처방은 똑같으니 그냥 약을 먹으며 지나가길 바라자는 의사의 결론이다. 기관지염으로 진행된 기침이 흉통을 낳았고, 호흡이 다소 가쁘고 힘들어졌다. 약기운이 떨어지면 사지가 떨릴 정도로 통증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오늘도 결국 견디다 못해 오후 늦게 두 아이를 대동해 병원에 갔다. 아픈 엄마의 진료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코끝이 시큰하다. 다 큰 어른이 간호사 언니께 궁둥이 반쪽을 며칠도 안 되어 또 오픈하고 말았다. 그래도 맞아야 한다. 빨리 나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니까. 따끔한 주사 한 방으로 또 저녁밥 지을 힘을 얻어 돌아오는 것이다. 40여 년 앓았던 감기몸살 중에 최고봉을 만났다. 인정이다. 지독하고 질긴 녀석.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내 안에 구질하게 남아 있는 것이냐. 일주일의 말미를 줄 테니 어여 썩 물러가라.
열흘쯤 지나니 이제야 키보드에 손을 얹을 힘이 생겼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아기가 아이가 되고, 성인이 됨에 있어 엄마의 역할이 참 무겁고도 크구나. '아이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라는 말은 거짓이다. 배는 여전히 고프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따끈할 때 한 입 먹고 싶다. 배고픔 보다, 음식의 맛보다 아이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잠시 1차원적 욕구를 내려놓을 뿐. 벌레 한 마리도 잡지 못해 비명만 지르던 내가 이제 모기 스나이퍼로 활약하고 있는 것도 아이를 물기 전에 내가 그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겠지. 신기할 만큼 아이의 실낱같은 목소리에도 잠이 깨는 걸 보면 잠귀도 출산과 함께 발달하는 것 같고 말이다. 모성애는 학습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개인차도 분명 존재하겠지. 그러나 후천적이라기에는 너무나 본능적인 엄마만의 '무언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엄마가 되는 순간 다들 신묘한 능력치를 얻게 되는 걸까. 아니면 그런 척 힘을 짜내보는 것일까.
"엄마, 엄마도 못 하는 게 있어?"
병뚜껑을 못 열어 낑낑대고 있으니 도담이가 와서 한 마디 던진다.
이마에 계란프라이가 가능할 지경이어도, 눈꺼풀이 천근이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도 아이 학교에 태워줄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때가 되면 적은 반찬수로나마 밥을 차려주고, 집을 정리하고, 집안일을 처리하고, 그러는 중간중간 아기 목욕, 놀이, 책 읽기까지 완수하는 사람. 누가 몰라줘도 어쩌겠나. 나는 이미 엄마가 되었고, 여전히 오늘도 히어로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흉내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버섯 먹은 마리오처럼 하루빨리 파워가 업그레이드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연재를 제 때 하지 못한 장문의 변명이라 해석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늘 감사합니다.
2024년 6월 치 생귤탱귤한 기운을 미리 보냅니다.
오늘 밤도, 어느 지붕 아래 열이 나는 아이를 달래고 있을 엄마에게 저의 남은 기운을 으랏차차. 보냅니다.